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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형 교수의 아이키우기]영재 조기교육 열풍

입력 | 2001-02-07 18:37:00


최근 한 젊은 아버지가 화급히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와 불쑥 자녀 문제를 꺼내 놓았다. 그는 “아들애가 천재인 것 같은데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시켜야 하나. 전문가들이 영재아를 교육시킬 수 있는 특수한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5세난 아들이 이미 한글을 익힌데 이어 한자도 200여자를 넘게 익혔고, 영어를 가르치니 수십개 단어를 알고 있다고 전했다. 대견한 아들 생각에 상기된 아버지의 얼굴은 아들이 유치원에서 혼자 놀 뿐 다른 아이와 어울리지를 못한다고 말할 때에 한순간 그늘졌다.

글을 읽는 아이를 보면서 부모는 천재의 환상에 젖어 자녀를 천재로 만들려고 부단히 애쓴다. 사실 부모들의 ‘천재 환상’이 어린이들을 적응 문제아로 만들 수 있다.

1920년대 영재에 대한 첫 조사 연구를 실시한 미국 스탠퍼드대 터만교수팀은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25만명의 초등생 중 지능지수, 성적, 가족사, 신체, 사회적 능력 등의 항목으로 나눠 영재 1500명을 선발했다. 연구팀은 이어 이들에게 특별한 영재 교육을 시키지 않고 수십 년 동안 그들의 삶을 추적 조사했다.

영재들이 60대가 됐을 때 대부분 전문직종에 근무하면서 건강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영재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며 특별한 간섭 없이도 스스로 능력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조사 결과다.

2002년 3월부터 영재교육진흥법이 발효되면서 벌써부터 유아를 대상으로 영재 판별에 들떠 있다. 영재를 판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능지수가 높은 아이를, 특정 능력을 가진 아이를, 언어 발달이 빠른 아이를 영재로 판별할 가능성이 크고 언어 표현을 권하는 부모의 자녀가 영재로 판별될 수 있다.

이 판별이 잘못될 수 있는 이유는 유아기 지능지수와 성장 후 지능지수 간 일치 정도가 낮을 수 있고, 특정 능력이 집중력에 의한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또 언어가 늦은 아이는 사람 관계보다는 사물에 관심 있거나, 또는 내성적 성격이거나 사려 깊은 아이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유아기 때부터 시작된 영재 열풍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또 다른 ‘교육 실험’이 되지 않을까 매우 걱정스럽다.

▽이순형교수 약력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아동학 박사 △한국아동학회 부회장 △서울대 생활과학대 어린이집 원장 △저서:특수아동의 발달과 지도, 한국의 명문종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