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동에 1500원 하는 국밥집이 있는데 한번 가 보세요. 먹을만해요"
우리 회사의 최실장이 두 번이나 얘기를 하였다. 낙원동 허리우드극장 옆에 1500원짜리 국밥집이 있다는 기사를 어디에선가 본적이 있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무심히 넘겨버린 식당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식당에 대하여 후한 평가를 하지 않는 최실장이, 그것도 두 번씩이나 '먹을 만하다'고 하니 도저히 안가볼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하였다.
낙원상가 허리우드극장 옆의 '소문난 추어탕' .
추어탕이란 간판에 다소 헷갈리긴 했지만 식당밖에 걸어 놓은 국솥이며 뚝배기에 국을 퍼주는 아줌마의 모습에서 바로 '이 집이 그 집'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식당 밖 대로변엔 식당을 찾은 기사들이 가져온 택시들이 쭉 늘어서 있다.
일요일 오후 4시. 점심인지 새참인지 알 수 없는 시간에 꽤 많은 손님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또 나온다. 식당에 들어서니 머릿속에 그려보았던 그런 누추한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간도 여유로웠고 시장골목 국밥집의 운치마저 느껴졌다.
닳고닳아 반지르르해진 원형 나무 탁자엔 등받이 없는 둥그런 나무의자가 서너개씩 둘러져 놓여있다. 탁자는 모두 9개. 띄엄띄엄 둘러앉아 국밥을 먹고있는 손님들은 대부분이 혼자 온 손님들인 듯 뜨거운 국을 식히기 위하여 '후후' 부는 바람소리뿐, 싸구려 국밥집다운 어수선한 수다는 없었다.
먼저 자리한 손님과 눈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으니 곧 플라스틱 뚝배기에 담아오는 뜨끈한 국과 밥, 그리고 군대에서 먹던 맛을 연상시키는 허연 깍두기가 나왔다.
먼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을 한 수저 떠보았다. 얼큰하고 개운한 맛에 연거푸 몇 수저 국물을 들이키고야 수저를 밥으로 옮길 수 있었다.
매일 마장동과 가락동에서 쇠뼈, 소내장을 사와 이 것들로 국물을 내고 여기에 말린 우거지와 두부를 넣어 국을 끓인다고 한다. 기름끼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한 국물이다.
우거지도 구수하고 간간이 건져지는 두부도 여느 때와는 맛이 색다른 느낌이다.
'먹을 만한 맛' 그 이상의 맛이었다.
"소문난추어탕"은 이 자리에서만 49년째다. 22년간 시어머니가 하던 식당을 며느리 권영희씨가 대물림한지 어느덧 2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처음엔 추어탕도 하였으나 가격을 맞출 수 없어 지금은 국밥으로 메뉴를 통일하였다.
지금도 새벽 4시면 가게문을 연다. 이 집엔 따로 손님이 몰리는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새벽 4시부터 가게문을 닫는 밤10시까지 쉴새 없이 손님들이 들락거린다. 가게문을 열면 가장 먼지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택시기사들. 곧이어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탑골공원을 찾는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이어받는다.
한때는 낙원동이 떠돌이 악사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기타와 색소폰가방을 메고 일자리를 구하다가 일을 얻지 못한 악사들이 찾아와 삶의 넋두리와 푸념을 국밥에 같이 말아 퍼 넘기던 애환이 서린 밥집이었다. 그래서 밥값을 올리지 못하다 보니 어느덧 서울에서 가장 싼 밥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80년대에 500원, 700원을, 90년대에 1000원을 받다가 97년부터 지금까지 1500원을 받고 있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싼 국밥집'으로 소문이 많이 나 여기저기서 일부러 찾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은행원, 회사원들도 단골이고 연인들끼리 심지어는 외국인들까지 식당을 찾는다.
맛은 기대하지 않고 싼 밥값이 신기하여 왔다가는 국밥맛에 반해 단골이 되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장사를 해서 남느냐고 물으면 "그래도 조금은 남는다"고 한다.
"내가 돈욕심이 없으니까 하지 제정신으로야 이렇게 하겠소"
그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자식들을 복되게 하는 것"이라는 시어머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했다.
각박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훈훈한 인심과 푸근한 정을 국밥 한 그릇에 담아 우리에게 전해주는 마음 따뜻한 식당이다.
[eatncook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