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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재호/대북 전력지원과 제네바 합의

입력 | 2001-02-08 18:37:00


대북 전력지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실무협의회가 7일 평양에서 시작됐지만 전력은 올 해 남북관계를 좌우할 핵심 변수다. 협의 결과에 따라서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원하는 200만㎾의 전력 중 50만㎾를 당장 달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쉽게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 형편도 어렵다”는 것이 남쪽의 보편적인 정서다.

개인적으로 대북 전력문제 해법은 제네바 기본합의체제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시 공화당 정부 인사들이 그런 주장을 해서가 아니라 달리 다른 선택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94년 체결된 기본합의문은 이미 그 이행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돼 있다. 합의문은 2003년까지 경수로 2기를 북한에 넘겨주도록 돼 있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잘해야 2008년에나 공사가 끝난다. 북한이 그때까지 지금처럼 혹독한 전력난을 견디면서 기다려줄까.

46억달러에 달하는 경수로 건설비용도 문제다. 비용의 70%를 부담하는 한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000여억원의 국채를 발행해서 비용을 충당할 계획이다. 빚을 내서 공사를 해주는 셈인데 이런 부담을 언제까지 지고 갈 수 있을까.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말이다.

경수로가 완공된다고 해도 전력을 흘려 보낼 고압송전망 건설공사에만 3억달러에서 30억달러의 비용이 추가로 든다. 이 돈은 또 누가 부담해야 하나.

미국이 매년 북한에 중유 50만t(1억달러 상당)을 주고 있지만 공화당 정부에서도 이 약속이 변함 없이 지켜질지 의문이다. 그들로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터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점들을 따져 보면 “제네바 기본합의를 재검토하자”는 미 공화당 인사들의 제안은 곰곰이 새겨들을 구석이 있다. “경수로 2기 중 1기만 지어 주고 나머지는 화력발전소로 대체하자”는 폴 월포비치 국방부 부장관의 제안도 마찬가지다.

물론 화력발전소를 지어 준다고 해도 돈은 든다. 50만㎾ 화력발전소 건설에는 약 6000억원이 소요된다. 그러나 당사자인 북한이 이런 방식을 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제네바 기본합의를 먼저 깼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이지 북한인들 언제가 될지도 모를 경수로 완공 시기만을 기다리고 싶겠는가. 북한이 원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제네바 기본합의는 그동안 북한의 핵개발 억지라는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기본합의가 없었더라면 지난 6년간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낙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바뀌고 있다. 서명 당사국인 미국에서 재검토 얘기가 나오는데 서명 당사국도 아닌 한국이 기본합의문에만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기본합의문의 재검토, 엄밀히 말하면 보완은 남북한과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일 수도 있다. 우리도 나름대로의 판단과 대책이 있어야 한다.

기본합의문 체제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전력 차관’이라도 만들어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만하다. 북한에 전력을 주게 되면 경수로 공사비용 분담률은 당연히 그만큼 낮춰져야 하는 것 아닌가.

보다 큰 그림 속에서 대북 전력지원문제를 보자.

이재호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