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훈
“한국에서는 더 이상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일본인으로 귀화하겠다는 생각을 60% 정도 굳힌 상태입니다”.
태극마크를 목표로 일본대표의 유혹을 뿌리친 채 모국을 찾은 한 재일동포 유도선수가 국내의 높은 벽을 이기지 못하고 한국인임을 영원히 포기할 결심을 굳히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일본 긴키대를 졸업한 뒤 98년 5월부터 부산시청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추성훈(26)이 그 주인공. 재일동포 4세인 추성훈은 74년 전국체전에 재일교포 대표로 출전해 우승했던 아버지 추계이씨(50)의 영향으로 4살때 도복을 입은 뒤 고교시절 전국대회를 휩쓸었고 대학때는 관서지방대회를 3연패했다.대학시절 일본내 랭킹은 5위.당연히 일본 유수의 실업팀에서 스카우트제의가 쏟아졌고 일본유도협회는 “귀화하면 일본대표도 될 수 있다”며 유혹했다.
하지만 일본인으로의 편안한 삶을 포기한채 귀화를 거부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추성훈은 한국행을 선택했고 그 때만 해도 태극마크가 곧 손에 잡힐듯 꿈에 부풀었던게 사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추성훈이 속한 81kg급에는 97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조인철(용인대)이 버티고 있기 때문.여기다 특정대학을 중심으로 한 심판의 텃세도 만만찮게 작용하며 추성훈은 그동안의 숱한 대표선발전에서 단 한차례도 조인철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를 ‘편파 판정’탓으로 여긴 추성훈은 그 사이 끊임없이 심판에 대한 불신을 토로했고 지난해말 코리아오픈에서 외국인 심판이 주관한 경기에서 보란 듯이 조인철을 한판으로 누이며 우승,자신의 주장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하기도 했다.
올 초 국가대표 1차선발전 결승에서 추성훈을 우세승으로 힘겹게 이긴 조인철도 추성훈에 대해 “가장 힘든 상대다.기량이 뛰어나다”며 껄끄러운 상대임을 숨기지 않았다.
당시 대한유도회도 추성훈의 기량을 높이 평가해 조인철과 함께 태릉선수촌 입촌은 물론 유럽전지훈련에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으나 ‘체급별 1명’이라는 규정에 묶여 결국 제외됐고 그 직후 추성훈은 미련없이 짐을 싸 부모가 살고 있는 일본 오사카로 떠나버렸다.
8일 국제전화를 통해 들려온 추성훈의 목소리는 무거웠다.이미 귀화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일본 실업팀들과 접촉해 서너군데로부터 입단제의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태극마크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는데서 오는 갈등인 듯 했다.
“부모님도 이제는 한국에 가지 말라고 하실 정도입니다.일본에서도 차별이 있지만 한국처럼 심하지도 않고 내놓고 하지는 않습니다”. 진한 이쉬움이 담긴 말을 어렵게 토해낸 추성훈은 “일본으로 귀화한다면 반드시 일본대표가 돼 한국선수들과 정정당당히 겨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과연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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