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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만의 종교이야기]神의 탓인가 인간의 탓인가

입력 | 2001-02-08 18:37:00


“어째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지난 1월 26일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州)를 강습한 진도 7.9의 지진으로 10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와 20만 명이 넘는 부상자, 그리고 엄청난 재산피해가 초래됐다.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어느 병원에서는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가 백 명 넘게 몰살했으며, 건물 더미에 파묻혀 수백 명의 초등학생들이 떼죽음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극적으로 구출된 이도 있었다. 52시간 동안 건물 더미에 파묻혀 있던 세 살 난 여자아이는 거의 다친 곳이 없이 구조되었는데, 인도군 구조대에 따르면 구출 당시 그 아이는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을 외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 여자아이의 기적적인 생환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지진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는 무수한 사람들을 살상하며, 살아남은 사람에게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더구나 자연재해는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고통을 가한다. 그래서 전지전능하고 온전히 선한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기 쉽다. 지금 지진으로 피붙이를 잃은 사람들은 “도대체 신은 무슨 까닭으로 이런 천벌을 내린단 말인가?”라고 절규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자연재해 중에는 인간의 환경파괴로 야기된 것도 적지 않다. 예컨대 인간의 무차별적 벌목으로 대규모 홍수가 초래된 경우에는 재해를 신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지진과 같은 경우에는 인간의 탓으로 돌릴 여지가 별로 없다. 도무지 이런 참상을 허락한 신의 뜻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과학자들이 ‘판(板)구조론’으로 아무리 지진의 발생 이유를 설명한다고 해도, 왜 다른 이가 아나라 하필 내 사랑하는 이가 죽어야 했는지를 말해줄 도리는 없다.

물론 신이 정의롭지 못하다거나 아니면 전지전능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설명이 가능하다. 신이 심심한 나머지 장난삼아 지진을 일으켰다거나, 아니면 악마의 힘이 더 강해서 지진을 막을 힘이 없었다고 하면 설명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신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 엄격한 인과응보의 논리로 설명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의 고통은 전생에 저지른 업에 따라 자동적으로 초래된 것뿐이라는 불교식 설명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진 피해에 황망해 하고 있는 무슬림들은 유일신 ‘알라’의 뜻은 너무나도 심원(深遠)해서 인간이 당장은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쉬누신이나 시바신을 믿는 힌두교 신자들은 이번 지진을 파괴와 창조가 무한히 계속되는 우주의 주기적인 과정 중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나마 마음 속을 정리해야 하는 까닭은 살아남은 사람은 어쨌든 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혼란스런 세상에 의미의 질서를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장석만(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