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이 잘 어울리는 소년. 아직 세상을 다 경험해보지 못한 소년에게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있을까.
그러나 할리 조엘 오스먼트(12)는 비극적 음영이 드리운 슬픈 눈동자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죽은 자들의 혼령을 보며 두려움에 떠는 콜(‘식스 센스’)이나 “원래 개떡같은 세상”이지만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사랑나누기를 실천하는 트레버(‘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를 연기할 때 그의 눈망울은 막 울고 난 듯 처연하기만 하다. 그늘에서 모험의 세계로 뛰어오른 해리 포터와는 달리 그늘 속에 침잠해 어른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너무 일찍 고통을 알아버린 소년의 때이른 성숙과 우울이 배어있다.
‘식스 센스’로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같은 또래 배우 들가운데 선두에 선 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17일 국내에 개봉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면 그 세 명이 각자 또 다른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식의 사랑나누기 운동을 시작하는 트레버 역을 맡았다. 바른생활 캠페인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이지만 그는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잘은 모르지만 세상에는 사람들이 잘 살기 어려운 곳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걸어나오는 사람들이 무언가 힘을 얻었다고 느낀다면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알콜중독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트레버의 신산한 삶에 대해 그가 직접 이해하지는 못할 터.
“우리 가족은 트레버의 가족과 다르기 때문에 나는 트레버의 삶을 상상해야만 했다. 트레버의 분노를 나도 느끼기 위해 최대한 슬픈 일을 생각하고 기분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도 진짜 트레버처럼 반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영화에서 그가 함께 공연한 배우는 아카데미 남녀주연상 수상자인 케빈 스페이시와 헬렌 헌트. “내 촬영이 없는 날도 케빈과 헬렌의 연기를 보러 세트에 갔는데 언제나 배울 게 있었다. 이들이 보통 사람들처럼 농담하고 어슬렁거리다가 자신들의 캐릭터로 곧장 들어가는 걸 보는 건 대단한 경험이었다. 특히 헬렌 헌트가 아이를 좋아해 촬영기간 내내 행복했다.”
배우 유진 오스멘트의 아들인 그는 네살때 연기를 시작했다.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 검프의 아들로 출연한 것을 비롯해 모두 21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1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은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에 200만 달러를 받고 출연한다.
그는 ‘영화로 뭐가 많이 달라졌느냐’는 물음에 영화 속의 조숙한 소년처럼, “아주 바쁘긴 해도 집에선 달라진 게 없다. 나는 보통의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는 평범한 아이일 뿐”이라고 제법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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