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사쿠 신지라는 감독이 있습니다. 1930년 생이니까 일흔이 넘은 노장인 셈입니다. 1961년에 이라는 영화로 장편 영화 연출에 데뷔한 이래 지난 해 말 60번째 연출작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 영화 평론가 기무라 미라이 씨 표현을 따르면 "후카사쿠 감독이 일관되게 그려온 바이올런스 작품인 동시에 60번 째 작품에 이르러 처음으로 시도하는 청춘 영화"입니다. 청춘 영화인 동시에 폭력 영화라… 왠지 어릴 때 속칭 '비짜' 비디오 테이프로 돌려보았던 시리즈가 생각나는군요. 사실 은 그보다 한술 더 뜨는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중학생 마흔 두 명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내용이니까요.
시대 배경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일본의 현대를 그리고 있지만 물론 가상의 현대입니다. 학교 폭력과 청소년 범죄가 줄을 이어 이미 12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청소년들이 이끄는 지옥인 셈이지요. 이에 정부는 청소년들을 보다 강한 생존 능력을 가진 성인으로 길러내기 위해 '신세기교육개혁법'을 제정하는데 이 법이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전쟁 시뮬레이션으로 활용하기 위해 중학교 한 반을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판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법에 따라 선정된 반은 주인공 아키야(후지와라 다쓰야)가 속해 있는 반입니다. 반 학생들은 수학 여행을 가는 줄 알고 여행을 떠나지만 사실은 지옥의 무인도로 끌려가게 됩니다.
아키야를 둘러싸고 있는 기성 세대들 모습은 한심합니다. 아키야의 아버지는 직장을 잃은 뒤 "감바레(힘내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아키야의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과 딸에게 바보 취급을 받고 사표를 냈습니다. 후카사쿠 감독은 이들을 두고 "전후(戰後) 고속 경제 성장, 거품 경제 붕괴를 거쳐 가치관이 몽땅 변해버린 시대의 희생자"라고 말하고 있군요. 그럴 듯합니다.
실제로 요즘 일본인들의 모습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와 비슷합니다. 최근 일본을 다녀왔는데 한 버스 운전 기사는 이렇게 토로하더군요. "주위 젊은 기사들은 '리스트라'(구조 조정) 때문에 전부 권고 사직 당했습니다. 나는 그나마 40년이라는 경력을 인정받아 살아남았지요. 그나마 언제 회사가 문을 닫을지 몰라 걱정입니다." 불황이 10년씩이나 이어지다 보니 지금 일본 사회는 우리 IMF 때를 방불케 하더군요.
감독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실제로 종전이 되던 중학교 3학년 때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공부는 뒷전이고 병기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구호가 '감바레'였어요. 함포 사격을 당할라 치면 친구 시체 밑에 숨어 목숨을 이어가야 했지요. 전쟁이 끝나자 이제 구호는 '평화 일본을 위해 감바레'로 바뀌었어요." 말하자면 감독이 과거에 겪었던 전쟁의 참혹한 기억과 최근의 일본 불황이 을 탄생시킨 셈입니다.
영화가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는 희망적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면서 학생들은 '사랑'을 배워갑니다. 아키야는 사랑하는 노리코(마에다 아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게 됩니다.
황당하고 과격한 스토리라인이 지극히 일본적이다, 싶지 않습니까. 일본에서 등급은 15세 미만 관람 불가이지만 감독은 "그래도 규칙을 어겨서라도 어린 친구들이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이 또한 위험한 발언인 셈입니다.
또 하나 매력은 기타노 다케시입니다. 사표를 내는 무기력한 기타노 선생님 역으로 출연하거든요. 기타노 다케시는 후카사쿠 감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후카사쿠 감독은 학생 시절 때부터 동경하던 분입니다. 이번 출연 의뢰를 받고 기다렸다는 듯 승낙했지요. 현장에서 가장 힘이 넘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노장 후카사쿠 감독이었습니다. 만약 를 후카사쿠 감독이 연출했더라면 지금의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없었을 겁니다."
기타노 다케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기타노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 는 후카사쿠 감독에게 먼저 연출 의뢰(주연은 기타노)가 갔었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아 결국 기타노 감독이 감독과 주연을 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유준(영화칼럼리스트)66090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