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환(全哲煥)한국은행 총재가 “예상보다 빠르게 경기가 냉각하고 있다”며 경착륙(硬着陸) 경고를 한 것은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 ‘경기 바닥론’을 경계한 것으로 해석된다. 비교적 중립적 입장에서 금융통화 정책을 운용하는 중앙은행 총재는 정부 일각의 성급한 낙관론과는 달리 경기가 빠른 속도로 하강중임을 확인해 주었다.
산업생산은 작년 9월 이후 4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고 수출 증가율의 큰폭 둔화, 소비 투자 심리의 위축 등 어디를 살펴보더라도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기 바닥론은 정부의 유동성 지원 덕으로 금융시장이 다소 살아난 것에서 생긴 착시(錯視)현상이다. 전총재는 상반기 중 성장률이 3%까지 내려가는 경착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한은은 실물경제의 추락을 막기 위해 콜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이라는 카드를 집었지만 경제정책의 주안점을 구조조정에 둬야 한다고 보았다. 콜금리의 미조정은 구조조정의 포기가 아니라 수술(구조조정)을 받기 위한 체력 보강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호전 기미를 보이는 금융시장이 기조적으로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긴요하다.
특히 구조적으로 취약한 금융시장과 현대 등 일부 대기업의 신용위험 등 불안 요인을 제거해 줘야 한다. 노동과 공공분야의 개혁도 아직 마무리가 안돼 있다. 이런 상태에서 경기 부양을 하면 경제가 일시적으로 반짝 좋아질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
이번 콜금리 인하로 심상치 않은 물가 오름세에 나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특히 작년의 물가 상승은 의료수가, 상하수도 및 철도 요금, 등록금 등 공공요금이 선도했다. 공공요금 인상의 자제와 함께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은의 분석으로는 올해 1·4분기(1∼3월)에 경제가 가장 어려운 시기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구조조정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해외 여건이 나쁘지 않다면 2·4분기(4∼6월)에 L자형 곡선을 그리다가 하반기부터는 상승 곡선을 그리리라는 관측이다.
올해에는 선거가 없어 경제살리기를 위한 여건이 좋은 만큼 착실한 구조조정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증시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경제를 일으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