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블랙박스/마이클 베히 지음/김창환 외 옮김/408쪽 2만원/풀빛
‘세포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우연에 의해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정교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가진 세포의 탄생은 진화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복잡한 전문 용어를 동원했지만 이 책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즉, 진화의 근본단위라 할 수 있는 세포의 생화학적 시스템은 이를 구성하는 화합물의 우연한 조합으로 만들어질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으로 개념화하고, 이는 전능한 ‘지적설계자’의 손길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생명은 신의 창조물’이란 기독교의 공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도발적인 기획이다.
이 책은 1996년 출간 즉시 기독교 뿌리가 깊은 미국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철학적인 주장에 그쳤던 창조론 진영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고, 진화론 진영은 이를 논박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저자는 일약 필립 존슨, 윌리엄 뎀스키와 함께 미국 창조과학의 새 버전인 ‘지적 설계 가설’(ID·Intellctual Design theory)의 3인방에 올랐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이 책의 독해와 해석에는 신중한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기존 진화론이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을 근거로 진화론 체계 전체를 송두리째 전복할 수 있다는 논의 전개 방식이 불쾌할 수도 있다.
책의 내용에 대한 치명적인 반론은 베히가 세포의 탄생기원을 연구한 무수한 연구논문들을 참고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창조론자 사냥꾼’의 수장인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학자는 그를 ‘게으른 과학자’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신학계 일부에서도 당장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미스터리의 해답을 신(神)에서 찾는 태도에 이의를 달기도 했다.
이 책을 둘러싸고 ‘보스턴 리뷰’ 등에서 벌어졌던 흥미있는 논쟁은 리처드 도킨스 홈페이지(www.world―of―dawkins.com)에 마련된 패러디사이트 ‘베히의 빈박스’(Behe’s Empty Box)에서 볼 수 있다. 원서 ‘Darwins Black Box’(Simon & Schuster·1996).
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