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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엿보기]메이저리그와 MVP

입력 | 2001-02-09 19:31:00


1995년 내셔널리그 MVP는 신시내티의 배리 라킨이 차지했다.

당시 라킨은 타율 0.319, 15홈런, 66타점, 51도루의 성적을 기록하며 타격부분에서 리그 9위, 도루부분에서는 리그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라킨의 이러한 기록은 빼어난 것임이 틀림없지만 리그 MVP를 차지할만큼 독보적인 것은 아니었다.

0.319의 타율도 평범했고 홈런과 타점수는 리그 MVP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도루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리그 5위안에서 라킨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홈런과 타점 2관왕을 차지한 단테 비셋(당시 콜로라도), 타격과 최다안타 2개 부분에서 리그 1위에 오른 토니 그윈(센디에이고)이 리그 MVP에 더 근접한 기록을 작성해 라킨보다 이들이 수상했다면 우리들은 좀 더 쉽게 수긍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록면에서 뒤처진 라킨이 어떻게 이들을 제치고 리그 MVP를 수상할 수 있었을까?

우리들은 흔히 MVP에 대해 그해 최고의 기록을 작성한 선수에게 주는 상 혹은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상이라고 알고 있다.

물론 이 의미가 틀리다는 말은 아니다. MVP는 1년에 단 한명에게만 주어지는 상으로 MVP를 수상했다는 것은 곧 그 선수가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MVP를 수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타격 타이틀 한 부분을 차지하거나 전 부분에서 걸쳐 상위권을 유지해야 하는 등 걸출한 성적을 남겨야 가능한 것으로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자 최상의 목표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바로 MVP이다.

자, 그럼 우리는 여기서 MVP의 좀 더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자.

MVP는 Most Valuable Player의 약자로 최고의 기록을 작성한 선수에게 주는 상이라는 의미보다는 최고의 가치있는 기록을 작성한 선수에게 주는 상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최고의 기록보다는 최고의 가치에 좀 더 비중을 두고 평가하는 것이 바로 메이저리그이다.

1995년 신시내티는 평범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85승 59패를 거두며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신시내티가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팀의 리더이자 찬스메이커로 맹활약한 라킨 덕분이었고 라킨이 없었다면 팀의 우승이 불가능할 정도로 라킨은 외형상 나타난 기록 이상의 가치있는 활약을 펼쳤던 것이다.

이렇듯 최고의 기록은 아니지만 최고의 가치를 보여줬기 때문에 라킨은 당당히 리그 MVP를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MVP를 수상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기록도 중요하지만 팀성적도 개인기록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즉 다시말해 아무리 개인이 뛰어난 성적을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팀성적과 연관이 없는 기록이라면 기자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없어 MVP 수상에 그만큼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들어 더욱 더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데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의 사례에서만 살펴보아도 우리들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세기의 홈런 경쟁에서 맥과이어는 70개의 홈런으로 새로운 신기록을 작성하며 라이벌 소사에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그해 내셔널리그 MVP는 맥과이어가 아니라 새미 소사의 몫이었다.

소사가 MVP를 차지한 이유는 간단했다.

맥과이어의 기록은 팀성적과는 관계없는 개인 기록인 반면에 소사의 기록은 팀성적과 직결된 가치있는 기록이라는 점이다.

(1998년 맥과이어의 소속팀 세인트루이스는 83승에 그치며 지구 3위를 차지했고 소사의 소속팀 시카고 컵스는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당시 누구에게 MVP를 주어야 하느냐는 논란이 계속될 때에도 팀성적과 연결된 소사의 기록에 손을 들어주는 기자들이 더 많았고 심지어 맥과이어의 소속팀 감독이었던 토니 라누사조차도 '리그 MVP는 당연히 소사가 받아야된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2000시즌에도 역시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다.

시즌 내내 내셔널리그 개인 기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4할 타율에 도전하는 콜로라도 좌타자 토드 헬튼.

헬튼은 4할 등극에는 실패했지만 0.372의 고타율로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타점, 최다안타, 장타율, 출루율 등 무려 5개부분의 타격 타이틀을 휩쓸었고 홈런도 42개나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전체 선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헬튼이 이렇게 대단한 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내셔널리그 MVP를 차지한 선수는 샌프란시스코의 제프 캔트였다.

캔트가 2000시즌 작성한 기록은 타율 0.334, 33홈런, 125타점으로 캔트 입장에서는 생애 최고의 기록을 작성했지만 헬튼의 눈부신 기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이렇듯 기록에서 뒤처지는 캔트가 리그 MVP를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팀공헌도 덕분이었다.

캔트는 전반기 내내 팀타선을 주도하며 지구 최하위까지 떨어졌던 소속팀 샌프란시스코를 지구 우승까지 이끄는데 눈부신 역할을 담당했고 역시 캔트의 이러한 활약이 없었다면 샌프란시스코는 지구 우승을 쉽게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다시 말해 헬튼의 기록이 개인 기록에 그쳤다면 캔트의 기록은 소속팀의 승리에 알토란 같은 역할을 담당한 것이 MVP 표를 캔트에게 던진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비슷한 기록이 작성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결정이 내려졌을까?

아마도 최고의 가치보다는 최고의 기록 쪽으로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김용한/동아닷컴 객원기자 from007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