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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 증시투입]절차-투명성 문제있다

입력 | 2001-02-11 18:27:00


『정부의 연기금 주식투자비중 확대 방안은 국내 증시에서 기관투자가의 역할과 우리나라 연금제도의 현실과 관련해 심각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증시를 부양하려는 정부의 ‘충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연기금의 증시 투입이 주가를 띄우고 증시 체질을 견실하게 만들 수 있는지조차도 분명하지 않다. 연기금이 기관투자가로서의 바람직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과 방법이 무엇인지를 역사적 경험과 외국 사례를 통해 다각도로 조명해 본다.』

연기금을 동원해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최근의 정부 방침에 대해 말들이 많다.

뒷짐을 지고 있는 기관투자가들 때문에 애를 먹고 있던 증권가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 실제 효과 유무를 떠나 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나타낸다는 것 자체가 투자심리를 돋우는 호재이기 때문이다. 반면 연금가입자와 학자들은 “그간의 연금제도 개혁이 물거품이 되는 것 이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글 싣는 순서▼

- 절차-투명성 문제있다
- 부양효과 얼마나
- 미국 '캘퍼스연금'의 경우
- 연기금 운용 어떻게

이해관계에 따라 평가는 제각각이지만 정부의 접근방식과 기본전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폭넓은 공감을 사고 있다.

무엇보다 ‘연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정부 스스로가 저버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국민연금관리공단 내의 ‘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향후 대응과 위상 변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98년 말 국민연금법 개정 때 신설됐다. 여기에는 정부 대표뿐만 아니라 가입자 및 시민단체 대표들도 참여해 국민연금을 주식 채권 등의 투자자산에 얼마씩 투자할지를 결정한다. 자산운용 전반에 걸쳐 검토, 토의 및 감독 권한이 주어진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와 더불어 가입자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운용위원회의 설립 취지를 존중할 의사가 있었다면 연기금 주식투자 확대방안을 마치 최종결정된 것처럼 일방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기금운용변경계획안을 제출해 운용위원회와 먼저 협의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김진수교수는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와 운용수입으로 조성된 순수민간기금이며 정부는 선의의 관리자로서의 역할만 맡은 것인데도 정부는 정책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눈 먼 돈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운용위원회가 이번에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운용위원회의 위상과 나아가 국민연금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대 김연명 교수는 “올해 연간운용계획은 이미 작년 10월에 결정이 났으며 가입자 및 시민단체 대표들은 주식투자비중을 늘리는 데 반대하므로 변경계획안을 둘러싸고 격론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작년까지 운용위원회 위원을 지낸 전국교직원노조 이수호위원장은 “지난 2년간 회의에 참석해보니 정부측의 정보독점과 전문성 차이로 형식적인 협의에 그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우려했다.

국민연금을 눈 먼 돈 취급하는 정부 태도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연금도 선진국 연금들처럼 주식투자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무지 또는 오해에서 비롯된 강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리나라 연금들은 성격이나 운용방식이 외국의 연금들과 다르기 때문에 주식투자 비중을 단순비교할 수 없다는 것.

국민연금관리공단 연구센터 이용하책임연구원은 “미국에서 주식투자를 많이 하는 연금들은 공적연금이 아니라 개인연금, 기업연금 등 사적연금”이라며 “우리 국민연금과 성격이 비슷한 노령유족장애연금(OASDI)은 위험자산이라는 이유로 주식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연방특별채권만 인수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사적연금들이 주식투자를 많이 하는 것도 미국에서는 70년대 이후 주식이 채권보다는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반면 국민연금의 경우 안정적인 자산가치 유지가 가장 중시되는 공적연금인 데다 국내 주식은 채권보다 역사적으로 수익률이 낮고 시장변동성도 심한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과 똑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다는 설명. 국민연금관리공단 연구센터 한성윤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라고 하는 것은 가입자의 권리 보호를 최우선시해야 하는 공적연금제도의 기본틀에 어긋남과 동시에 적절한 시점에 주식을 사고 팔아야 하는 효율적인 투자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