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들은 외국인의 뒤를 이어 '2차 유동성장세'를 주도할 것인가.
2월들어 2400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한 기관투자가들에 대해 증시안팎에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순매도로 전환한 외국인들의 매수공백을 훌륭히 메울 것이란 평을 듣고 있다.
12일 거래소시장에서도 기관투자가들은 700억원을 순매수하면서 시장참가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주말 미국증시의 조정으로 국내증시도 동반하락할 것이란 우려를 불식시켰다.
일반적으로 증시에서 기관투자가는 투신 증권 보험 은행 기금 투자회사(뮤추얼펀드) 등을 지칭한다.
현재 증시에서는 '기관장세'에 대해 긍정론과 신중론이 팽팽히 맞서 있다.
저금리로 기관투자가들이 주식투자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긍정론의 요체다.
반대로 현재 기관투자들의 순매수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현시점에서 순매수 전환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게 신중론의 견해다.
먼저 낙관론자들은 역마진에 시달리는 은행이나 보험 등 기관투자가들이 주식투자비중을 늘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조달금리를 밑도는 국고채나 예보채 등 안전자산에만 무한정 투자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특히 저금리로 기업들의 자금조달비용이 낮아져 기업부도위험이 줄어든 것도 기관투자가들의 매수확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성노 동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국고채 수익률이 4%대에 진입한 상황에서 은행이나 보험사 등이 회사채나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들이 주식투자비중을 늘리면서 외국인들의 매수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팀장은 1998년초 회사채 수익률이 20%초반일 때 금융기관 전체의 주식투자비중이 4.8%이었는데 6%후반인 현재에도 이같은 비율을 유지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고 지적한다. 최근 투신권의 MMF에 대규모 자금이 들어오는 것도 위험자산인 회사채와 주식에 투자하기 위한 전단계라고 김팀장은 주장한다.
실제로 역마진에 가장 시달리는 생명보험사들은 주식투자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흥국생명 자산운용팀의 한 펀드매니저는 "5%의 국고채 수익률로는 평균 8%인 조달금리를 충족할 수 없다"며 "3월결산이후 회사채와 주식투자비중을 적극적으로 늘릴 계획이다"고 밝혔다.
정부가 증시부양목적으로 1조 8000억원 규모의 연기금을 투입하는 것도 기관주도 장세를 가능케 한다. 지난연말처럼 투신사나 자산운용사에 배당될 경우 투신권의 매수기반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기 코스모투자자문 주식운용이사는 "정부의 연기금 투입과 저금리기조는 기관투자가들의 주식투자 기반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고 전망한다. 특히 정부가 증시부양에 적극적인 의사를 전력투구하고 있어 '과거와 달리 투자위험이 대폭 줄어든 것'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적어도 외국인들이 공격적으로 매도하지 않는다면 기관투자가들의 주도로 750포인트까지는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와 달리 기관투자가들의 매수여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저금리로 자산운용에 애로를 느끼지만 그렇다고 현시점에서 적극적으로 주식에 투자할 형편도 못된다는 입장이다.
기관투자가의 핵심인 투신권으로 본격적인 자금유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4조 626억(1월 2일)이던 주식형 상품규모가 4조 1787억원(2월 9일)으로 겨우 1161억원 늘어났다. 투신권의 주식형 상품이 주가가 오른후 본격적으로 들어온다는 후행성을 감안하더라도 자금유입속도가 늦다는게 중론이다.
한국투신과 대한투신 그리고 현대투자신탁증권 등 부실 투신사에 대한 가시적인 구조조정이 없었다는게 자금유입을 더디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적어도 AIG그룹과 현대투자신탁증권의 외자유치협상이 마무리돼야 자금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는게 신중론자들은 주장한다.
은행권은 이미 위험자산(여신+회사채 등) 투자비중이 높아 주식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경기침체로 기존 기업대출이 부실채권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여기다 산업은행이 인수한 투기등급 회사채중 10%를 다시 넘겨받는 등 위험자산비중이 과도하다는게 이승주 대우증권 은행업 애널리스트의 주장이다.
손보사도 지난해 막대한 주식평가손으로 선뜻 주식투자에 나설 형편이 못된다고 이 애널리스트는 지적한다.
생보사가 투자여력이 있지만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혼자 주식투자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박정구 새턴투자자문 대표도 기관투자가들이 외국인을 대신할 매수주체로 나서기 힘들다고 예상한다. 박대표는 "저금리가 유지되면 고수익을 추구하는 기관자금이 회사채나 주식시장으로 들어오는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기관투자가들이 외국인들을 대신할 정도로 강도 높은 매수를 유지하려면 경기회복이나 기업구조조정 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시점은 헷지펀드처럼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기관자금이 들어오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정태욱 현대증권 이사도 "'한마리 제비가 봄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일부 기관자금들의 유입으로 '기관화 장세'를 언급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주장한다. 기관투자가들이 시장을 주도하려면 저금리가 아니라 기업부도위험 감소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영암 pya84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