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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엽의 이미지로 보는 세상]저 먼곳을 향한 게바라의 시선

입력 | 2001-02-12 18:55:00


서양의 아방가르드 예술은 부르주아 문화에 반발해 19세기 무렵 등장했다. 당시의 부르주아 문화는 예술가들에게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의 고상함’을 돋보이게 할 것을 요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에 나가 이른바 ‘베스트셀러’가 될 것을 요구했다.

◇혁명세대도 세월 지나면…

부르주아의 이러한 요구에 반발해 아방가르드 예술은 부르주아 문화를 전복하는 혁명적 예술의 길로 나아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부르주아 문화와 혁명 사이의 세속적 다툼에서 벗어나 ‘예술을 위한 예술’ 운동의 길로 나아간다.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이러한 반발은 비단 예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사 곳곳의 여러 영역에서 우리는 부르주아 문화에 반발해 혁명의 길을 택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세속을 떠나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 후에는 부르주아 문화의 중심에 서곤 한다. 한 때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었던 인상주의 미술가들이 오늘날은 미술관의 중심을 차지하며 대가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 한 때는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오늘날은 권력과 재화의 현실에 눈뜨고 있다. 기존의 관례와 질서에 저항하던 보헤미안들이 부르주아로 변신하고, 그러한 변신을 통해 과거를 잊는다.

그렇다면, 아방가르드와 중심, 꿈과 현실, 보헤미안과 부르주아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요즈음 발간된 ‘보보스’라는 책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이러한 두 가지를 결합시킨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알리고 있다.

지금은 실리콘밸리의 한복판에 서 있지만, 우드스탁 공연에 열광하던 젊은 날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유지하려고 하는 세대. 지금은 월스트리트 증권가를 누비고 있지만, 반전 운동을 통해 뿜어내던 젊은 날의 꿈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세대. 책 ‘보보스’는 이들 세대의 탄생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혁명가인 체 게바라를 캐리커처어한 이미지가 그에 관한 평전의 표지에 실려 널리 퍼졌다. 갈기 머리를 휘날리며 먼 저편을 응시하는 게바라의 이미지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그의 정책과 이념이 아니라 점점 잊혀져 가는 우리 자신의 꿈과 열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통해 지금의 자신 속에 보헤미안의 꿈과 열정을 지피려고 했을 것이다.

◇"꿈 없는 현실은 삭막할뿐"

그렇지만 이미지란 때론 허망하다. 스쳐 지나가고 나면 그만일 뿐, 이미지를 통해 되살리려고 했던 꿈과 열정은 눈길 한 번 주는 시간의 길이를 넘지 못하고 사라진다.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일상을 달려가야 한다. 그러나 기억하자. 중심과 현실은 아방가르드적 모험과 보헤미안적 꿈을 통해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