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연구단체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미국의 생명공학업체인 셀레라 제노믹스사는 인간의 DNA 설계도인 게놈(genome·유전체)의 전모를 13일 공동 발표했다.
▼집대성한 국가기관조차 없어▼
사람의 각 세포에 존재하는 DNA 실타래인 게놈은 29억1000만여개의 문자(염기: A, C, G, T)로 나열돼 있으며 이 중 세포 내의 생명체 기능을 담당하는 효소와 단백질의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는 2만6588개(추가예상 약 1만2000개)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개인간의 유전정보 차이는 평균 염기 1250개마다 1개 꼴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구체적으로 인간을 구성하는 부품 이 몇 개인지, 그 생체기능은 무엇인지는 과학자들이 풀어가야 할 숙제이지만 이번 발표는 인류가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고 생체부품과 그 작용원리를 파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세계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세기적 사건을 지켜보면서 한마디로 두렵다 는 생각이 앞선다. 우리의 생명공학 분야 연구 여건이 너무나 열악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기술부는 1995년부터 게놈연구의 시범사업을 추진하였고, 2000년부터는 프런티어 연구사업을 전개하면서 인간게놈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HGP에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 일본과 중국의 연구기관만 참여하고 있고 한국은 빠져 있다. 현재 국내 연구기관의 게놈정보 산출능력은 셀레라사의 1% 정도이고 세계 정보 산출력에는 0.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놈정보의 컴퓨터 저장과 전산 해석 능력을 들여다 보면 더욱 걱정스럽다. 인간과 모델생물의 게놈정보를 모두 무료로 줘도 담아놓고 분석할 전산시스템이 없고 게놈정보를 국가적으로 집대성할 기관조차 없다.
게다가 국내 연구자들이 산출한 유전정보는 외국기관을 통해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국내 모든 게놈 정보와 관련 생명공학 연구 결과가 밖으로 새나가고 있다. 더욱이 게놈정보를 1차 가공할 생물정보학 전문가는 불과 몇 명 뿐이다. 더 나아가 연구에 필요한 게놈분석장비들과 실험소재가 대부분 수입품이기 때문에 단위 정보당 산출단가면에서도 국제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세계의 제약 및 생물산업체는 물론 기술선진국들은 국운을 걸고 게놈연구에 달려들고 있다. 게놈정보가 바로 산업정보이기 때문이다. 즉 이로부터 신약이 개발되고 유전자 치료 같은 신의술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게놈정보의 지적소유권 문제는 의약산업과 생물산업의 가장 치열한 경쟁 대상으로 등장해 있다.
국내 연구기관과 산업체가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때 우리는 21세기 바이오산업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 여건에 맞는 현실적인 게놈연구의 주제를 설정하고 산학연의 협력을 통한 총력적인 대처가 시급하다.
▼산학연 손잡고 총력 대처를▼
인간게놈 연구는 1차적으로 보건복지를 위한 과제이지만, 기술선진국에서는 에너지와 식량, 환경과 같은 주제를 병행 채택하고 있다는 점은 참조할 만하다. 인간게놈 정보와 더불어 모델동물의 게놈정보는 의약이나 의술개발에 필수적이며 식물의 게놈정보는 식량과 생물자원을 증산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또 산업미생물이나 극한환경 미생물의 게놈정보는 정밀화학의 대체산업기술로 이어지기 때문에 듀퐁과 같은 세계적인 화학회사들이 이 게놈정보에 매달리고 있다.
게놈연구는 개별적 접근 에서 총체적 개념 으로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즉 정보전산기술과 로봇기술은 물론이고 화학 물리학 의학 생물학 등 모든 기초과학분야가 총동원돼 게놈 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생명현상을 탐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게놈기능의 학제적 해석 과 같은 게놈연구의 후속사업이다. 이 결과 DNA칩 과 단백질칩 같은 신과학기술이 등장했고 이어서 분자반도체나 바이오컴퓨터 같은 생체모방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명의 신비가 유형적인 형태로 다가옴으로서 그 활용범위를 어떻게 정할지가 새로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생로병사가 수록된 생명의 책 이라고 할 인간 유전자지도는새로운 가치기준과 윤리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대실(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