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회계감사→나빠진 감사의견→은행의 자금지원 감소→기업자금사정 악화.’
국내 기업들이 ‘2∼3월 주총시즌을 전후한 회계대란’ 가능성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이달 6일 불투명 회계법인에 대한 처벌을 지시하고, 진념(陳稔) 경제부총리도 “회계가 불투명한 기업은 퇴출된다”고 선언하면서 부실회계처리를 없애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퍼져가고 있다.
기업의 불안감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으로 일부 회계법인이 문을 닫으면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문제가 생길 감사의견은 낼 수 없다”며 태도가 달라져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탓이다.
특히 지난해 11·3 기업평가에서 가까스로 ‘회생 판정’을 받은 235개 기업이 우선 대상이다.
당시 ‘근본적인 유동성문제는 있지만 철저한 자구노력을 한다면 살아날 수 있다’는 꼬리표가 붙었던 235개 기업은 “회계감사 결과 ‘의견 거절’이나 ‘부적정 의견’을 받으면 앞날을 장담 못한다”고 보고 있다.
▽상시퇴출제도 가동중〓금융감독원 이성로(李成魯)신용감독국장은 지난달 “앞으로 기업의 상시퇴출 시스템을 가동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3 판정이 가을맞이 대청소였다면 앞으로는 매일 아침 쓸고 닦는 것은 기본 아니냐”고 비유했다.
시중은행도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한빛은행 권덕상 팀장은 “회계법인이 부적정 의견을 내면 (기업지원 여부를) 처음부터 다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 정기홍(鄭基鴻)부원장은 “기업 퇴출여부야 은행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지만 기초 판단자료가 잘못됐다면 은행도 달리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지난해 회생판정이 과거자료인 재무제표만을 근거로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영업이익에 대해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이자보상배율의 기초가 되는 매출이 부풀려졌다는 판정을 받으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우량 시중은행 K심사역은 “작년까지는 정식 회계감사를 받기 전이라도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임시 보고서를 미리 보내왔지만 올해는 뚝 끊겼다”고 말했다.
만약 회계법인이 감사 때 ‘원칙대로 하자’며 수정해주지 않으면 대출 심사자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회계법인이 변화의 시작〓공인회계사(CPA) 경력 4년차인 A씨는 지난해 말 한 중소기업의 회계감사를 맡았다. 재무제표엔 연구개발비(R&D) 10억원이 이연자산으로 표시돼 있었다. A회계사는 “R&D 비용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자산으로 인정하며 통상 비용으로 처리한다”고 주장했다. 회사측은 “그럴 경우 당기순이익이 10억원 줄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A씨는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감사의견을 ‘한정’으로 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회사측은 순이익이 10억원 줄어들었다.
15일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부적정의견’ ‘의견거절’ 소견은 전체 대상의 2∼3%선. 그러나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에는 10%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두 가지 의견을 받을 경우 금감위 규정에 따라 무보증회사채 발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제로 98년 대농그룹은 회계법인이 “재고자산 2000억원을 찾을 수 없다”며 ‘부적정의견’보다 한 단계 높은 ‘한정의견’을 냈는데도 1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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