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내 채권전문가들 사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박성진 차장(삼성투신운용 채권전략팀)은 흥미로운 견해를 피력했다. 박 차장은 "최근 BBB등급 회사채로 자금이 몰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자금경색해소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즉 일부 BBB 등급 회사채의 인기가 금리인하->위험신호도 증가->회사채투자증가->신용경색해소라는 선순환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신 그는 "금융기관들이 BBB등급 회사채중에서 투자가능한 종목들을 선취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 인기다"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박 차장은 "이들 채권은 소규모에 불과해 추가 자금유입은 제한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한마디로 BBB등급 회사채에 대한 시장의 인기는 자금선순환의 출발점이 아니라 우량채권 에 대한 선취매 공세의 마무리 신호라는게 그의 결론이다.
최근 채권운용을 아웃소싱하기로 한 새마을금고 연합회의 결정도 박 차장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새마을금고협회는 외부 자산운용기관에 채권운용을 일임하면서 회사채 투자대상을 '국공채와 A-이상 회사채'로 제한했다.
부도위험이 거의 없으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BBB등급 회사채도 있지만 이것은 소수에 불과해 굳이 모험할 필요가 없다는 게 새마을금고연합회측의 설명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안전자산선호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기업들의 회사채 자금수요가 늘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식시장참가자들과 달리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조속한 경기회복을 낙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주중반이후 국고채(3년물) 수익률이 반등했지만 추가하락 가능성이 크다는 공감대가 넓게 형성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의 권위있는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증권도 유사한 견해를 피력했다.
16일 골드만삭스증권은 미국경제는 'V'자형이 아닌 'U'자형으로 반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반기에 회복속도에 탄력이 붙지만 1.4%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과잉투자 후유증으로 첨단 기술업종은 전반적인 경기보다 회복시기가 늦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말까지 경기저점을 형성할지도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도 시장의 예상보다 경기회복 속도가 더딜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IT업종의 부진으로 한국수출이 급속한 성장세를 회복하지 못해 국내경기의 바닥권 탈출이 올연말이나 내년초로 늦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16일(현지시간) 미국증시는 이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미국증시는 기업실적 악화와 인플레이션 우려감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특히 생산자물가지수가 예상보다 큰 폭(1.1%)으로 오른 게 투자자들의 매도공세를 불러왔다
FRB(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경기부양을 위해선 금리를 대폭 내려야 하지만 물가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선 금리를 올려야만 하는 딜렘마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물가를 잡기 위해 FRB가 금리인하에 소극적으로 나올 경우 미국경기 회복은 늦춰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경우 국내수출과 경기회복속도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골드만삭스증권의 전망대로 경기반등이 올연말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바닥권을 벗어나더라도 완만한 'U'자 모습을 나타낼 공산이 높다.
실물경제의 회복지연은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공급'이란 테마하나로 버텨온 국내증시에 악재로 작용한다. J.P모건증권의 최근 지적처럼 주가는 유동성공급만으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실물경기의 위축은 '유동성 공급' 자체를 어렵게 한다.
즉 경기불황으로 기업들의 원리금 상환능력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은행들은 아무리 금리가 낮아도 자발적으로 신용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켜야 하는 부담도 무한정한 기업대출 증가를 어렵게 한다.
김준년 리젠트자산운용 주식운용팀장은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테마'는 미국증시와 국내증시에서 이미 약효가 떨어진 상태다"며 "금리인하가 실물경기회복을 가져오는 징후를 나타내야 추가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물경제가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영암 pya84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