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내버스들은 버스 외부에 큰 글씨로 ‘시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붙이고 다닌다. 이 호소문은 버스업체들이 유가(油價) 폭등과 승객 감소로 인해 고사(枯死)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버스를 애용하면 경제난에 도움이 되고 소비자들의 가계에도 이익이 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하고 있다.
실제 시내버스를 타보면 버스 회사에 미안한 느낌이 들 정도로 좌석이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차안이 넓고 승객도 얼마 안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승차감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승용차의 편리함에 이미 익숙해 있다.
지하철도 외면 받기는 마찬가지다. 막히지 않는 장점 때문에 때로는 지하철을 타는 것이 승용차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지하 승강장까지 한참 걸어 내려가고, 또 전동차를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도로 위는 언제나 승용차의 물결로 넘쳐난다.
올 겨울 지하철과 버스 승객들이 모처럼 크게 늘었다. 어느 해보다 빈번히, 그리고 많이 내린 눈 때문이다. 며칠 전 폭설 때에는 지하철에 그렇게 승객이 많은 것을 처음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집에 놔두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했다. 하지만 눈이 녹으면 사람들은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비록 불가항력적인 것이긴 해도 눈 때문에 꽤나 불편을 겪었던 올 겨울을 보내면서 평소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편한 삶’ ‘편리한 삶’을 달리 바라보게 된다.
정보화사회에서 내거는 슬로건들은 하나같이 ‘편리한 세상’이다. 방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인터넷은 그 가운데 핵심이다.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 하지 않는 것 또한 우리도 모르는 사이 편안함에 매몰되어 가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편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꼭 뒤떨진 것이거나 비생산적인 것은 아니다. 시내버스는 요금이 싼 것 이외에도 승용차보다 안전한 장점이 있고 지하철은 책을 읽는 등의 시간 활용이 가능하다.
불편한 것이지만 누가 하더라도 꼭 해야 되는 것도 있다. 가령 폭설이 내린 뒤 누군가는 눈을 치워야만 한다. 요즘 심각하게 거론되는 인문학의 위기, 문화의 위기도 비슷한 사례다. 그 근본을 따져보면 결국 편리함에 대한 선호, 불편한 것에 대한 기피현상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책과 힘들게 씨름해야 하는 인문학은 그 ‘불편함’에 비해 대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전공하려는 사람들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문화생활도 따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 점에서 편한 것을 추구하는 세상 흐름에는 맞지 않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편한 삶을 택하느냐, 그렇지 않은 삶을 택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편하지 않은 삶’도 얼마든지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편안한 삶’쪽으로 몰고가는 데 있다. 이번 겨울 모처럼 버스나 지하철을 타본 사람들이 ‘탈만하구나’라고 느꼈다면 그것대로 불편함의 대가로 얻은 ‘소득’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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