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에 폭설이 쏟아진 15일 오후, 코미디언 김용만을 만나러 가면서 내심 기대했다. 30초마다 한번씩 웃을 수 있으리라고.
‘30초마다 웃음이 터지지 않으면 채널이 돌아간다’는 오락프로그램을 세 개나 진행하고 있는 김용만은, 기대와는 달리 ‘안 웃겼다’.
그는 “원래 말수가 적고 낯가림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코미디언은 평소 모습에 따라 ‘방송에서도 웃기는 사람’과 ‘방송에서는 웃기는 사람’으로 나뉜다는데 그는 ‘방송에서는’ 쪽이었다.
그와 일해본 스탭들은 “뒤풀이 자리에서도 겨우 자리를 지키다가 어느순간 슬그머니 사라지기 일쑤”라며 “평소에는 전혀 코미디언 같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다르다.
그는 적절한 순간마다 특유의 ‘애드립’으로 웃음을 이끌어 낸다. 방송사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전략 시간대’인 일요일 저녁의 버라이어티쇼를 승리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전투력’은 입증된다.
현재 그가 진행을 맡고 있는 프로그램은 ‘일요일 일요일밤에’‘전파견문록’, ‘21세기위원회’. 모두 MBC의 간판 오락프로그램이다.
그는 지난해 ‘MBC 코미디 대상’을 탔다. 올해로 데뷔 10년째인 그는 요즘 PD들로부터 “물이 올랐다” 말을 듣는다.
PD들이 ‘이쯤에서 터져줬으면’ 하는 순간에 그는 어김없이 웃음을 이끌어낸다. 프로그램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신경안쓰고 조금이라도 더 튀려는 출연자들 사이에서 그는 방송의 ‘흐름’을 잡아주는 일도 잊지 않는다.
“저도 한 때 튀려고 안달했던 적이 있지요. 심지어 섹시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고. 하지만 어쩐지 제게 맞지 않는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튀는 것을 포기한 그 순간, 그는 시청자들의 눈에 띄게 됐다.
98년 ‘21세기 위원회’중 ‘칭찬합시다’ 코너를 진행하면서 그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눈물과 웃음으로 시청자를 울리고 웃겼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남을 깎아내리는 웃음’이다. “남을 깎아내리는 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저급한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 “좋은 웃음은 결국 삶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그는 “인생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코미디 교과서”라고 말했다.
남을 배려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이런 태도 때문에 그의 프로그램에 섭외를 받은 출연자들은 “김용만이 있으니까”하며 선뜻 응하는 경우도 많다.
영화배우를 꿈꾸며 서울예전 방송연예학과에 진학했던 그는 “개그맨이 더 어울린다”는 주변의 권유로 91년 ‘KBS 대학생 개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데뷔했다. 개그 콘서트 동기는 김국진, 남희석, 유재석, 박수홍 등.
“코미디언은 10년마다 한번씩 인물들이 나온다”는 ‘10년 주기설’을 확인시켜 준 동기들이기도 하다. 특히 김국진과는 데뷔 초기 콤비로 활동한 후 10년을 붙어다녀 ‘전생에 부부였을 것’이라는 농담을 들을 정도다.
앞으로 그의 희망은 ‘연기’를 배우는 것. 그는 “오락 프로그램 진행만 하고 연기는 못하는 코미디언은 반쪽에 불과하다”며 “기회가 닿으면 시트콤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은 잘생긴 사람보다 유머가 있는 사람이 더 각광받는 시대. 웃기는 ‘요령’은 없을까.
그는 “무조건 코미디 프로를 많이 보라”고 권한다.
“남이 웃기는 것을 많이 보다보면 ‘웃음의 공식’을 나름대로 체득해 ‘아, 저 대사 다음에는 이렇게 웃기겠구나’하는 느낌이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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