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값을 치르려고 신용카드를 냈는데 옷가게의 카드전표를 받은 경험이 있는가. 그런 카드전표에 그냥 서명하면 탈세를 돕는 셈이 된다.
국세청과 카드사가 단합해 세금을 가로채는 위장가맹점과 ‘소리 없는 격전’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위장가맹점은 좀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없애도 계속 생겨나는 것이다.
▽왜 위장가맹점이 생기나〓유흥주점에서 100만원의 술값이 나왔을 경우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면 특별소비세 20만원, 교육세 6만원(특별소비세의 30%), 부가가치세 12만6000원 등 세금이 38만6000원에 이른다.
반면 위장가맹점을 이용하면 수수료를 제외한 90만원 가량을 손에 쥘 수 있다. 물론 세금은 한푼도 안낸다. 위장가맹점이 근절되기에는 탈세의 유혹이 너무 큰 게 현실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5월부터 첨단 조기경보시스템을 가동해 상당한 실적을 거뒀다. 매일 카드결제 승인자료를 카드사로부터 넘겨받아 입력하면 위장가맹점으로 의심되는 가맹점 리스트가 작성되는데 이를 하루 단위로 카드사에 통보해 카드거래를 완전 정지시키는 ‘초강수’를 둔 것. 국민카드사의 경우 지난해 국세청으로부터 2833개의 위장가맹점을 통보 받았으며 LG캐피탈과 삼성카드도 각각 3400개와 1871개의 위장가맹점을 통보 받아 거래 정지시켰다.
▼BC카드사 위장가맹점 거래정지 현황▼
기간
건수
2000.1
284
2000.2
273
2000.3
282
2000.4
217
2000.5
176
2000.6
186
2000.7
105
2000.8
129
2000.9
158
2000.10
166
2000.11
136
2000.12
141
2001.1
551
2001.2
357
▽단속도 소용없다〓이같은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위장가맹점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카드사들은 요즘도 매달 수백개씩의 위장가맹점을 통보 받는다. BC카드의 경우 올 들어 위장가맹점으로 거래 정지되는 월평균 건수가 지난해에 비해 4배 가량 증가했다.
우선 국세청 관리시스템에 큰 허점이 있다. 카드가맹점을 개설하려면 국세청이 내주는 사업자등록증과 은행계좌가 있어야 하는데 노숙자 등의 가짜 사장 명의로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실명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국세청이 위장가맹점을 카드사처럼 주민등록번호 및 주소지로 관리하지 않고 업소명으로만 관리해 위장가맹점으로 적발돼도 일단 문을 닫은 뒤 간판만 바꿔 달면 국세청이 사업자등록증을 또다시 내주고 있다.
한쪽에선 열심히 찾아내 없애고 또 다른 쪽에선 위장가맹점을 다시 열어주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국세청의 편법단속〓국세청은 위장가맹점 리스트에 포함된 모든 업소를 거래 정지시키라고 하면서 세금체납업소를 이 리스트에 슬쩍 포함시키는 ‘편법’을 사용해 반발을 사고 있다. 문제는 국세청이 위장가맹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서도 체납세금을 받으려고 단속명단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 모카드사의 경우 지난해 정상가맹점으로 소명돼 거래정지를 풀어준 가맹점 중 절반 가량이 위장가맹점과 관련이 없는 세금체납업소였다.
한 관계자는 “세금체납을 꼭 문제삼겠다면 일단 체납업체의 사업자등록을 취소하고 그에 따라 카드가맹점 자격을 박탈해야 할 것”이라며 “특정 업소를 마치 위장가맹점인양 거래 정지시켜 밀린 세금을 받아내는 건 당국의 권한남용”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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