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식(姜庾植) LG구조조정본부 사장. 그는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지만 요즘 축구대표팀 경기는 꼭 본다.
히딩크 감독 영입 이후 대표팀이 달라지는 모습이 경영학적인 관점에서 흥미로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히딩크 감독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비교하는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히딩크는 토종 기업에 영입된 외국인 CEO로 볼 수 있다.
▽‘CEO 히딩크’의 메시지〓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준 가장 인상깊은 메시지는 ‘일 중심, 성과 중심’의 시각. 그는 선수들을 판단할 때 경기장에서 얼마나 잘 뛰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선수의 사생활은 가급적 선수에게 맡긴다. 국내 기업의 CEO나 상사들이 부하를 ‘업무 그 자체’보다는 근무 시간, 복장, 충성심, 태도 등으로 평가하는 것과 대조된다. 또 히딩크는 선수 기용 때 학연 지연 등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전략적 사고’도 히딩크가 강조하는 덕목. 요즘 선수들은 히딩크 감독이 연습 도중 “왜 그렇게 패스했느냐” “왜 그리로 뛰어갔느냐”고 물을 때 가장 곤혹스럽다. “습관대로” 또는 “그냥 열심히 뛰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가는 혼난다.
선수들의 이런 행동은 습관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직장인과 같다. 현대경제연구원 김주현 전무는 “히딩크가 강조하는 ‘생각하는 축구’는 기업에서는 ‘전략적인 사고’와 맥을 같이한다”고 지적했다. ‘투지’만 강조해서는 축구팀도 기업도 글로벌경쟁에 낙오될 수밖에 없다.
히딩크가 도입한 ‘4―4―2 시스템’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비유할 수 있다. 국내 기업의 CEO는 해외 선진기업의 시스템과 관련, “한국에 맞지 않는다”며 외면하거나 ‘한국적인 적용’이라는 이름 아래 시스템의 본래 의미를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다.
전사적자원시스템(ERP)이나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연봉제가 대표적인 예. 선진 시스템이 우월하다고 판단되면 고통스럽더라도 조직 문화를 시스템에 맞춰야 한다는 것.
▼히딩크 감독의 메시지▼
히딩크
발언―행동
경영학적 적용
해석
생각하는 축구
전략적인 사고
일할 때 기업의 목표와 항상 연결시킴. 업무를 계속 혁신함.
사생활은 선수에게 맡긴다
일 중심, 성과 중심 관리 및 평가
자기 관리는 스스로 맡긴다. 일의 우선 순위도 스스로 정할 것.
4-4-2시스템 도입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
조직문화와 구성원의 생각을 글로벌시스템에 맞도록 혁신
혈연 지연 학연으로부터 자유로움
인사의 공정성
조직원을 능력과 성과로만 평가.
선수들과 자유롭고 격의없는 토론 강조
민주적인 리더십
리더가 업무에 정통하고 부하들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리더십 확보.
▽문제는 우리에게도 있다〓한 컨설턴트는 “히딩크 붐은 사대주의적인 사고방식과도 연결돼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국내 대학 출신 컨설턴트 말은 무시하면서도 똑같은 말이라도 외국인 컨설턴트가 하면 “역시 외국인이 낫다”고 평가하는 것과 똑같은 구조라는 지적. 차범근, 허정무 감독처럼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국내 실정도 잘 아는 감독이 말할 때는 잘 귀담아 듣지 않다가 히딩크가 한마디하면 역시 “외국 감독은 뭔가 다르다”는 반응인 것과 같은 이치.
외국인 CEO가 인사를 하면 ‘능력에 따른 발탁’으로 높이 평가하고 국내 CEO가 과감한 인사를 하면 수상쩍은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국내 CEO나 감독에게는 지연과 학연을 들먹이며 민원을 하고 외국인 CEO와 감독에게는 말 한마디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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