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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베를린영화제서 한국배우들 끝까지 침묵

입력 | 2001-02-19 09:45:00


베를린영화제의 주상영관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지하1층 프레스센터 옆에는 200석 규모의 기자회견장이 마련돼 있다. 보통 하루 3차례 있는 경쟁 부문 시사회가 끝나고 나면 감독과 배우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온 기자들과 회견하는 장소다.

이곳은 철저히 시장의 논리가 지배했다. 유명 스타나 감독이 나타나면 좌석은 물론 계단까지 꽉차서 발디딜 틈이 없는 반면 무명 인물이 나오면 좌석이 텅비기 일쑤였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기자회견에선 비록 절반이 한국기자였지만 빈 좌석은 거의 없었다. 단상에는 배우 송강호 이영애 김태우 신하균과 명필름의 이은 이사, 박찬욱감독 등 7명이 통역까지 대동하고 올라갔다. 최다 인원이었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시작된 후 박찬욱 감독과 명필름 이은 이사 정도가 기자 질문에 답변할 뿐 배우들은 내내 침묵을 지켰다. 사회자가 배우들에 대한 질문을 유도했지만 송강호를 제외하곤 짤막한 답변에 그쳤다. 홍일점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이영애는 끝까지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나라 배우들의 인터뷰 모습은 달랐다. ‘말레나’의 모니카 벨루치는 영화속에선 거의 대사 한마디 없는 수동적 여성상을 연기했지만 기자회견장에선 뚜렷한 주관을 밝혔다. ‘초컬릿’의 레나 올린도 남편인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세계에 대한 명확한 해석으로 감독의 키스 세례를 받았다.

‘한니발’의 앤소니 홉킨스는 세익스피어 연극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등 시대를 넘나드는 박식함을 바탕으로 이 영화의 잔혹함에 대한 ‘변론’을 도맡다시피했다.

기자회견장에서 이들 외국 유명배우들은 대본에 쓰여진대로 연기하는 스크린 속 존재에 머물지 않고 풍부한 표현력과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소개했다. 기자와 관객들이 이들의 또다른 면모에 매료됐음은 물론이다.

시사회때 커튼콜에서도 한국배우들은 말없는 인사로 물러났지만 할리우드 스타들은 짤막한 육성을 함께 들려주는 일을 잊지 않았다.

우리 배우들의 이런 ‘과묵함’은 겸손한 것을 덕목으로 여기는 동양적인 사고방식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영화가 국제 무대를 노린다면 이런 침묵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는 점이다.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