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돼서 그런지, 아님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요즘 전 배짱이 하늘을 찌릅니다. 냉장고에 밑반찬 떨어진 걸 뻔히 알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 빨래통이 미어지게 빨래가 쌓여있지만 세탁기 돌리기가 귀찮을 때, 전 "배째라!" 합니다. 반찬이 만들기 싫은 걸 어쩌라구! 주부에게도 일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 너무 많아서 탈이지만...) 라고 합리화하며 느긋하게 TV를 보거나 책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는 거죠.
그러나 이런 배짱도 남편의 피곤한 얼굴 앞에서는 슬그머니 사라지기 일쑤죠. "그래, 누군 종일 일에, 사람에 시달리는데 내가 이게 무슨 짓이야..."하며 헐레벌떡 냉장고를 박박 긁어 반찬도 만들고, 찌개도 끓여 한상 차리는 거죠.
그렇게 초스피드로 만들어내는 요리 중에 오늘은 감자샐러드를 소개할까 합니다. 감자샐러드는 말 그대로 감자를 주재료로 만드는 샐러드인데요, 반찬으로도 괜찮고 간단한 간식으로그냥 먹어도 좋고, 식빵에 끼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도 색다른 맛이 나는 다목적 요리예요.
만드는 법은 요리라 칭하기 민망할만큼 쉽지만 먹다보면 한 그릇 후딱 비울 만큼 맛있는 감자샐러드. 우선 일등 감자를 고르는 게 관건이지요. 일등감자와 불량감자 구별법을 아세요? 전 잘 모르겠더라구요. 나름대로 상처가 없고 깨끗한 감자를 골라와도 맛없는 것이 있는가 하면 생긴 건 엉망인데도 부드럽고 맛있는 감자가 있더라구요. 그저 동네 슈퍼의 아저씨가 "맛있어요!" 하면 그러려니...합니다.
흙이 잔뜩 묻은 감자를 깨끗이 씻어서 껍질을 벗기고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삶는 거죠. 거기에 햄과 오이를 조그맣게 썰어서 마요네즈와 같이 버무려주면 요리 끝! 솜씨를 부릴 것도, 모양을 낼 것도 없는 이 단순하고 정직한 요리,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죠?
그래도 뭔가 특별한 비법을 찾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분들을 위해 몇가지 잔재주를 알려드리죠. 어떤 요리책에서 보니까 오이를 살짝 소금에 절이면 아삭아삭한 맛이 좋다고 하더군요. 한번 그렇게 해봤는데 뭐, 괜찮더라구요. 정성이 들어가서 나쁠 건 없잖아요? 그리고 마요네즈로 버무리기 전에 올리브 오일로 미리 버무려주는 것도 맛있다고 해요. 이 방법도 써봤는데 글쎄요...제가 둔한 건지, 뭐가 어떻게 맛있어졌다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흰 후추를 좀 뿌려주는 것도 좋다고 하는데요, 흰 후추가 없어서 그냥 까만 후추를 뿌려봤거든요. 우리 신랑은 후추를 뿌린 게 맛있다고 하더군요. 마요네즈의 느끼한 맛이 싫다면 후추를 뿌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톡 쏘는 맛이 개운하거든요.
마지막으로 감자샐러드는 뜨거운 것보단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차가운 것이 더 맛있습니다. 뜨거운 감자는 그냥 버터에 한번 볶아 드세요. 예술입니다.
***초스피드 감자샐러드 만드는 법***
재 료 : 감자 2개, 햄 조금, 오이 조금, 마요네즈, 후추
만들기 : 1. 감자를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긴다
2. 감자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삶는다.
3. 햄을 0.5cm 정도로 작게 썬다
4. 오이를 나박나박하게 썰어 1/4등분한다. (작은 부채꼴 모양으로요)
5. 감자가 익으면 건져 한 풀 식힌다
6. 감자와 햄, 오이를 넣고 마요네즈로 버무린다
7. 후추를 살짝 뿌린다.
ps. 음식에 관한 묘사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하루키는 '대지에 뺨을 비비고 싶을 정도로 잘 자란 감자'란 표현을 썼더라구요. 정말 폭신폭신하게 잘 쪄진 감자를 먹다보면 감자의 고향, 영양좋은 흙과 뜨거운 햇살이 있는 한적한 전원이 떠올라요. 하지만 뺨은 별로 비비고 싶지 않네요. 이게 대작가와 범인의 차이일까요?
조수영 sudat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