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상태로 쓰러져 경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인 남승룡옹.
‘금보다 값진 동메달.’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기억해주지 않았다.
남승룡옹(89).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옹에 이어 올림픽 동메달을 따낸 또 한사람의 한국마라톤 ‘영웅’이다.
그가 지난달 12일 노환으로 서울 경찰병원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산소마스크를 쓴 채 한달 넘게 누워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새벽에 일어나 조깅을 할 정도였으나 해를 넘긴 올 1월12일 갑작스러운 혼수상태로 이 병원에 입원한 것.
주치의인 경찰병원 내과 김성민 박사는 “폐부종과 상부위장관 출혈에 심부전, 신부전 등 다발성 장기손상이라 보통사람 같으면 벌써 운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이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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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은둔하는 영웅’으로 부른다. 베를린 올림픽 이후 손옹은 국민적 영웅으로 대우를 받은 반면 남옹은 그 그늘에 가린 채 오랜 세월 은둔생활을 해왔다. 손기정옹은 평소 “일제치하 남선배님과 동고동락해왔는데 세상으로부터 나만 환영받아 늘 미안하다”고 말해왔다.
손옹과 남옹은 평소 서로 “내가 형님”이라며 격의 없이 농담하는 둘도 없는 사이. 1912년생으로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옹이 5월, 남옹이 11월로 손옹이 빠르다. 그러나 모교인 양정고는 남옹이 1년 선배(1931년 입학). 그래서 손옹은 공식석상에선 남옹에 대해 “선배님”이라며 깍듯이 예우한다.
한반도의 남북 끝인 전남 순천(남승룡)과 평북 신의주(손기정)가 각각 고향인 두 사람은 성격도 대조적. 손옹은 활달하고 시원스러운 성격인데 반해 남옹은 말이 없고 차분한 성격. 손옹이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한 데 비해 남옹은 한때 전남대 체육학과 교수를 한 것 외에는 육상계와 일절 발을 끊고 지내왔다. 남옹의 가족으로는 부인 소갑순 여사(79)와 2남4녀 중 미국에 거주하는 장녀 장남 막내딸과 서울에서 살고 있는 차녀 3녀 막내아들이 있다. 막내아들 충웅씨는 교통사고로 6년째 병상에 누워있다.
한편 경기 용인시 수지의 딸집에서 요양하고 있는 손옹은 다소 호전된 상태. 썩어 들어가던 오른발은 거의 외과치료가 끝났고 당뇨와 동맥경화도 그만하다. 비록 침대에 누운 채 기동은 불편하지만 대화를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삼성서울병원에서 1주일에 한번씩 간호사가 와 몸 상태를 살피고 손옹도 한달에 한번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손옹은 그렇게 친한 사이이던 남옹이 위독하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크게 상심할까봐 주위에서 말해 주지 않은 것.
남옹과 손옹이 공식석상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96년 9월 베를린올림픽마라톤 제패 60주년기념 강연회 때. 그때 손옹은 후배체육인들이 남옹에게 손옹이 갖고 있는 금메달과 똑같은 모양의 금메달을 전달하자 “이제야 마음의 빚을 벗었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