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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달콤쌉싸름한 삶의 우화

입력 | 2001-02-20 15:05:00


라세 할스트롬 감독은 이상한 마을을 찾아내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의 팀 버튼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는 오래 전부터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상한 동네에 자주 카메라를 들이대왔다.

부터 까지 그의 카메라가 마주 본 풍경은 을씨년스럽지만 구차하지 않고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특별한 그 무엇이었다. 유럽 관광코스의 고풍스러움보단 사람 냄새 나는 뒷골목의 유럽을 사랑하는 라세 할스트롬 감독.

은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이전 영화들보다 훨씬 동화적이면서도 기어이 자신의 영화 문법에 충실히 다가간 영화다. 그가 찾아낸 동화 속 마을은 지난 100년간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던 박제화된 동네. 천박한, 어쩌면 순박한 것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곳에 어느 날 빨간 외투를 입은 모녀가 찾아온다. 북풍과 함께 찾아온 그들의 존재는 묘하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사탄으로, 또 누군가에겐 구세주로 불리게 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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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가게의 주인이 된 비엔나(줄리엣 비노쉬)는 사람들의 천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마을에 안착한다. 그녀는 달콤한 초콜릿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치료해주는 신기한 비법을 알고 있었고 덕분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서서히 다가간다.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면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조세핀(레나 올린), 딸과의 앙금 때문에 손자조차 마음대로 만날 수 없었던 아만드(주디 덴치), 할머니의 정을 느끼고 싶었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손자. 그들은 그녀의 초콜릿 치료 덕분에 비로소 새순처럼 돋아나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정작 비엔나는 천대받는 자신의 삶을 치료할 수 없었다. 타인과 섞일 수 없는 아픔이 뼈끝까지 저며오면 살던 곳을 등지고 또 다른 마을로 떠나는 삶을 반복했다.

마을 시장 레너드(알프레드 몰리나)는 "이혼은 절대 금물"이라 철석같이 믿는 인물이고 신부의 미사 문구까지 철저히 체크하는 엄청난 전통주의자다. 그의 말을 신처럼 떠받드는 마을 사람들은 초콜릿을 먹고 싶으면서도 먹지 않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엔나는 이 마을에서도 역시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한다. 그녀는 "교회엔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사탄으로 내몰리고 그녀가 운영하는 초콜릿 가게는 마을의 '금지구역'으로 낙인찍힌다. 당연히 이 초콜릿 가게를 찾는 이들은 버려진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그녀를 구원하는 인물들 역시 바로 그들이다. 마을의 법칙에 적응하지 못한 채 숨죽여 살았던 그들, 바이러스처럼 위험한 종족으로 여겨졌던 보트 유랑민들. 그들은 비엔나와 딸 아눅의 슬픔을 쉽게 잠재워준다. 특히 사탄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비슷한 유랑자 루(조니 뎁)와 비엔나가 엮어 가는 사랑은 특별하다. 버림받았기에 세상의 바깥으로만 떠도는 루, 버림받았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세상과 섞이길 원했던 비엔나의 화합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은 사실 동화처럼 단순하지만 담겨 있는 내용은 결코 간단치 않다. 전통과 변화에 관한 재미있는 우화이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융합을 담은 에티켓 북이기도 하며 여성들간의 묘한 연대의식을 담은 페미니즘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초콜릿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멋진 음식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나 와 닮았다.

우화처럼 재미있고 동화처럼 맑은 이야기 안에 담긴 삶에 관한 전언은 별 것 아니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할 것, 사랑할 순 없더라도 최소한 이해하려 노력할 것,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 것, 금식이나 절제보다 소중한 오감의 즐거움을 받아들일 것.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이 이 몇 가지 교훈을 받아들인 뒤 삶의 가식을 벗었듯, 역시 가식을 걷어내고 봐야 온전히 가슴을 적실 수 있는 영화다. 엔 어둡고 은밀하면서도 마약처럼 끌어당기는 초콜릿의 마력이 풍성히 담겨져 있다.

(감독 라세 할스트롬/주연 줄리엣 비노쉬, 조니 뎁, 주디 덴치, 레나 올린, 캐리 앤 모스/등급 12세 이용가/러닝타임 121분/개봉2월24일)

황희연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