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헌-김세진
90년대 중반 한국 남자배구에는 ‘좌 도헌―우 세진’시대가 있었다. 당시 신문지상에 실린 남자배구 국가대표팀의 경기 기사에는 예외 없이 “좌 도헌 우 세진의 강타로…”라는 글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이들은 한국 남자배구의 두 기둥이었다.
그러나 2년 터울로 대표팀에서 다정한 선후배 사이였던 이들은 대표팀을 떠나서는 언제나 피말리는 라이벌관계. 대학배구의 영원한 맞수인 성균관대(임도헌)와 한양대(김세진)를 다니며 시작된 이들의 라이벌 관계는 대학졸업 후 현대자동차와 삼성화재에 각각 입단하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들 포지션은 라이벌 관계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왔다. 레프트 공격수인 임도헌과 라이트 공격수인 김세진은 항상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봐야만 했던 것. 따라서 경기마다 이들은 서로 스파이크로 상대의 블로킹을 뚫거나 상대의 스파이크를블로킹으로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다. 또 이 대결에서 누가 이기느냐가 팀 승리와도 직결돼 둘간의 대결은 언제나 팬들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1삼성화재 배구 슈퍼리그에서는 아직까지 이들의 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 다 부상 후유증을 앓아왔기 때문. 임도헌은 지난해 6월 무릎수술을 한 뒤 회복이 더뎌2차대회 후반부터 선수단과 합류했고 김세진도 슈퍼리그 직전 무릎부상으로 2차대회까지 거의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3차대회부터 임도헌이 팀의 해결사로 돌아온 데 이어 김세진도 공격의 위력을 서서히 되찾음에 따라 21일 벌어질 3차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올 슈퍼리그들어 첫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현대자동차 강만수 감독이 아직 점프가 높지 않아 공격의 타점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임도헌을 기용하려는 것은 김세진의 발을 묶는 데는 임도헌이 적격이기 때문. 지난해 수술 전까지만 해도 국내 선수 중 김세진의 공격을 블로킹으로 완벽하게 잡아내는 것은 임도헌밖에 없다는 것이 배구인들의 일치된 의견. 물론 임도헌을 비롯해 국내 레프트 공격수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라이트 블로커는 김세진이다. 그만큼 이들은 팀 승리를 위해 서로가 넘어야만 할 산이다.
큰 키를 바탕으로 한 타점 높은 김세진의 스파이크를 임도헌의 블로킹이 얼마나 코트에 떨어뜨릴 수 있을지 올 슈퍼리그의 향방을 좌우할 잣대 중 하나다.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