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이 좋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사람보다 돈이 더 좋을 때가 많다. 돈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기는 어렵지만 불행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가족들은 사나워지고, 친구는 멀어지며, 마음은 비굴해진다. 더구나 지금은 ‘돈이 제갈량’인 시대가 아닌가. 그래서인지 신문들도 ‘Money’를 버는 ‘비즈니스’나 ‘재테크’를 통해 ‘부자아빠 만들기’에 열심이다. 돈이 사람보다 좋은 이유는 돈벼락을 맞아도 좋을 만큼 많다.
하지만 돈을 향한 나의 일편단심은 항상 짝사랑이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보유한 재산이 전체의 1%에 불과해서 더 그런가? 더구나 요즘은 가난한 순서가 되어버린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서 1위를 달리는 사에 해당하는 문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여성들의 평균 키인 158㎝ 높이만큼 1만원권 지폐를 쌓으면 1억5800만원쯤 된다고 하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만큼만 마음대로 써봤으면 좋겠다.
▼존경할 만한 기업인 그리워▼
그런데 이런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상속세가 사라지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려받은 게 많은 사람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식의 귀족사회가 되면 안 된다.” 나처럼 돈에 대한 원망(願望)이 원망(怨望)으로 발전한 사람들의 비판이 아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상속세 폐지 정책에 대한 미국 갑부들의 반응이다. 일시적인 포즈가 아니라 지속적인 운동으로 벌이는 일이라니 더 신기하다. 노력해서 벌고 번만큼 사회에 돌려줘서 빈부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부자들에게는 왜 ‘속물’ ‘천민’ ‘졸부’ 등의 단어가 아직도 따라다닐까. 재떨이와 부자는 모일수록 더럽다는 말까지 듣는다. 대우그룹의 회장이었던 김우중씨를 보아도 그렇다. ‘야전침대경영’ ‘세계경영’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황제경영’ ‘사기경영’ ‘독재경영’이라는 비난을 들으며 세계는 넓어도 할 일은 없는 신세가 되었다. 세계는 넓어서 숨을 곳은 많을 것이다. 세계는 넓으니 돈을 숨길 곳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잡으려는 체포조는 아무리 세계가 넓어도 끝까지 쫓아가겠다고 한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존경할 만한 기업인이 드물까. 소설 ‘상도(商道)’를 쓴 작가 최인호의 문제의식도 여기에 있었다. 최인호는 상업을 ‘상술(商術)’로만 생각하는 기업인들에게 상업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최인호가 조선 최대의 거상이었던 임상옥에게 주목한 것은 그가 이(利)보다는 의(義)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임상옥은 장사라는 것이 이익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商卽人)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리고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자(二生二死)는 철학을 평생 지켰다.
특히 임상옥의 현재적 의미나 가치는 그가 평생 교훈으로 삼고 가까이한 ‘계영배(戒盈杯)’에 있다.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술잔’이라는 뜻을 지닌 계영배는 가득 채우면 오히려 사라지고 적당히 채워야만 온전히 남아 있는 신기(神器)였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러니 ‘만족(滿足)’이 아닌 ‘자족(自足)’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기에 임상옥은 거상에 머무르지 않고 거인이 될 수 있었다.
▼최선의 하인이자 최악의 주인▼
우리 모두가 시간당 3000만원을 번다는 박찬호처럼 될 수는 없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는 빌 게이츠처럼 60조원의 재산을 가질 수도 없다. “요금이 장난이니?”라고 말하는 CF처럼 돈은 ‘장난’이기는커녕 오히려 ‘죽음’이다. 좋아서도 죽여주고 싫어서도 죽여주니까. 무엇보다도 돈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최선의 하인이자 최악의 주인이다. 문제는 자동차가 아니라 운전자인 것이다.
소설 ‘상도’에 나오듯이 재물은 흐르는 물과 같다. 그래서 고이면 썩고, 잡아도 빠져나간다. 평등하기에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리고 바닷물처럼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때문에 재물에 목마른 자는 너무 적게 가진 자가 아니라 너무 많이 바라는 자이기 쉽다. 어차피 필요 이상의 물은 몸 밖으로 내보내야 하지 않는가. 우리 몸의 70% 이상이 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 여전히 문제이긴 하지만.
김미현(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