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일곱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영혼을 달라고 한다면?"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읽었던 이 매혹적인 '악마와의 거래'를 영화 속에서 다시 보는 건 정말 유쾌한 일이다. 게다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으로 유혹해오는 악마가 섹시하고 잘 빠진 몸매의 여성이라면?
그러나 아쉽게도 매력적인 비즈니스 우먼으로 돌변한 악마(엘리자베스 헐리)는 '왕따'로 낙인찍힌 알렉스(브렌든 프레이저)를 철저히 망가뜨리는 캐릭터다. 비즈니스에 능하지 못한 알렉스는 "영혼은 맹장처럼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라는 악마의 말을 믿고 계약서에 덜컥 사인을 하고 만다.
과연 그는 '덤 앤 더머'를 능가하는 '멍청이'에 불과한 것일까. 끝까지 '거래의 기본'을 모르는 이 멍청한 남자는 일곱 가지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달콤한 말에 완전히 사기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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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일곱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쓸모 없는 하나를 달라"는 제안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현명한 비즈니스 우먼이 그런 식의 아둔한 계약을 했을 리는 없다. 악마가 제시한 '일곱 가지 소원'은 애프터서비스도 안 되는 엄청난 불량품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알렉스가 소원을 비는 방식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데에 있다. 그는 "부자가 되어 4년 동안 짝사랑했던 앨리슨(프랜시스 오코너)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는데,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할 수 없었던 악마는 딱 '그 말' 그대로의 소원만 성취시켜주고 만다.
부자는 됐으나 부정부패로 돈을 모은 악랄한 마약왕이 되었고 앨리슨과 결혼하긴 했으나 그녀의 마음까지 얻어내진 못했다. 첫 번째 소원부터 일곱 번째 소원까지 그는 항상 이런 식이다. 앨리슨을 사로잡을 만큼의 감성적인 남자가 되고 싶었으나 결국 감성 과잉이 돼버리고, 멋진 스포츠 스타가 되긴 했으나 '중요한 물건'이 땅콩만한 크기로 변해버린다. 말 발 좋은 남자가 됐으나 독특한 성적 취향 때문에 앨리슨을 차지하는 덴 실패하고, 링컨 대통령으로 부활하긴 했으나 게티스버그 연설을 할 때가 아니라 하필이면 오페라를 보다 저격 당하는 그 순간으로 이동한다.
이 몇 가지 상황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 영화는 완전히 "브랜든 프레이저의 원맨쇼"다. 그는 멍청한 남자부터 미국 대통령까지 영화 속에서 할 수 있는 변신이란 변신은 모두 마스터했다. 하지만 순간순간 번뜩이는 재치를 발휘하는 덴 많이 모자라 보인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브랜든 프레이저보다 분명 커트 수가 적은 악마 역의 엘리자베스 헐리가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패션쇼를 방불케 할만큼 이 영화에서 정말 많은 옷을 갈아입었다. 눈 깜작할 사이 옷이 바뀌고 헤어스타일이 바뀐다. 연기에 쏟아 부을 열정을 온갖 현란한 치장에만 쏟아 부은 엘리자베스 헐리가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을 리는 만무한 법. 헐리의 말투와 표정은 지나치게 부자연스럽다.
멋진 발상에 비해 은 따뜻한 온기를 살려내는 데에도,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 데에도 모두 실패했다. TV 시추에이션 코미디는 충분히 웃겨주기라도 하지만 이 영화는 개그 프로가 아니기에 웃음마저도 충분치 못하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인물이 매력적인 코미디 를 연출한 해롤드 래미스라는 사실도 씁쓸한 부분 중 하나. 아주 유능한 영화인의 '몰락'을 보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은 1967년에 제작된 스탠리 도너 감독, 피터 쿡, 더들리 무어 주연의 를 리메이크한 작품. 의 원제 역시 '비대즐드(Bedazzled, 유혹하다)'다.
(감독, 제작, 각본 해롤드 래미스/주연 브랜든 프레이저, 엘리자베스 헐리, 프랜시스 오코너/등급 15세 이용가/러닝타임 93분/개봉일 2월24일/한국 홈페이지http://www.foxkorea.co.kr/main/movie/bedazzledmain.html /외국 홈페이지 http://www.bedazzledmovie.com/)
황희연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