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7년간 중학교 영어교사를 해 온 이영은씨(31). 오랜 고심 끝에 이달 초 학교에 사표를 냈다. 당분간은 네살짜리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주변에선 “교사만큼 좋은 직장이 어딨다고 그걸 박차고 나오느냐”고 묻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이씨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중에 학원 교사라도 하면 되지만 아이는 한번 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를 것 같아서요.”
사회활동과 자녀양육을 병행하는 여성들, 특히 전문직 여성들이라면 사회적 성공과 가정의 행복을 놓고 저울질하며 고민을 하기 마련. 그런데 최근 들어 가정과 자녀를 희생시켜가며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던 데서 한발짝 비켜나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겠다’거나 ‘가정과 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있다.》
주위에서 사회활동에만 치중하다 자녀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면서 “‘슈퍼우먼’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가서는 이들이 늘면서 나름대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이씨처럼 부모들이 전문직일수록 일에만 몰두하느라 아이를 이사람 저사람의 손에 맡겨 키우다 나중에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많이 지켜본 이들에게 특히 이런 성향은 강하다.
200여명의 직원 중 여성이 95%에 이르는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는 지난해와 올해 초 여직원 가운데 자녀양육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 이들이 10명 중 4, 5명꼴에 달한다. 결혼 후 자녀를 출산한 여직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 키우는 것을 못 미더워하다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
이 회사가 최근 회원 10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자료에 따르면 결혼 후 맞벌이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남성은 53%가, 여성은 36%가 ‘원한다’는 응답을 해 이같은 경향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맞벌이를 원한다고 응답하는 남자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여성들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라며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 전념하려는 여성들이 많지만 오히려 친정 부모들이 ‘공부한 게 아깝지 않느냐’며 말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재택근무나 파트타임 직종이 이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웅진씽크빅의 문기복 마케팅팀장은 “집에서 아이를 보며 일을 할 수 있는 학습지 교사 가운데 기혼여성, 특히 교사나 약사 등 전문직을 가졌던 여성들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국내 여성학자들은 여성들의 ‘가정 복귀’가 아직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흐름이 일반화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 자녀양육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기혼여성들이 파트타임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도 ‘자발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스벤슨코리아 지사장 김숙자씨(54)의 생각은 다르다. 미국대사관 상무관으로 10여년간 일해온 김씨는 굵직한 통상업무를 도맡아오던 ‘잘 나가는’ 한국인 직원이었다. 하지만 직장생활 내내 마음 한쪽에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있던 중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과감히 사표를 던진 뒤 그 후 2년간은 아이들하고만 시간을 보냈다.
김씨는 자신있게 말한다.
“나중에 후회할지 모른다고요? 오히려 투철한 프로의식이 있는 여자라면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보낸 다음에도 다시 두려움 없이 사회에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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