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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완고함 녹인 달콤한 유혹

입력 | 2001-02-22 19:13:00


‘초콜렛’은 한편의 달콤한 동화같은 영화다. 하지만 그 달콤함 뒤에는 웃음의 미학을 둘러싼 중세 수도원의 살인극을 그린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맞먹을 만한 주제가 감춰져있다.

입안에서 향긋하게 터지는 달콤함 뒤에는 엄숙주의 대 쾌락주의, 정통주의 대 개방주의,부르주아윤리 대 보헤미아니즘의 뜨거운 충돌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북풍이 불던 어느날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 비엔(줄리엣 비노슈)이라는 여자가 딸과 함께 붉은 망토를 걸치고 나타난다. 그녀는 성실과 경건, 절제를 최대의 미덕으로 아는 이 마을 교회당 바로 맞은 편에 초콜렛 가게를 연다.

마을의 정신적 지주격인 레너드 시장(알프레드 몰리나)은 주일에 교회미사에도 참여 안하고 미혼모라고 당당히 밝히는 그녀에 대해 마을 전체에 경계경보를 내린다. 하지만 그녀가 만드는 초콜렛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발휘한다.

비엔의 초콜렛은 때론 ‘비아그라’가 되기도 하고 때론 ‘사랑의 묘약’이 되기도 한다. 또 사람들의 고통스런 마음의 상처를 씻어주는 치료제의 역할도 한다.

그런 마을에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보트 유랑민들이 나타나면서 이들을 배격하려는 레너드와 이들을 품에 안으려는 비엔은 정면충돌한다.

교회 목사의 연설문이라는 공식적 통로로 마을을 지배하는 레너드는 기성체제의 상징. 반면 초콜렛을 통해 개개인의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비엔은 반체제적 존재다. 레너드가 광장의 통치자라면 비엔은 밀실의 여왕이다.

예술은 광장의 아득함 보다는 밀실의 몽롱함을 더 사랑하는 법. 이 영화도 비엔의 유쾌한 승리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동화속 세계는 언제나 현실보다 과격하다. 초콜렛을 마약으로 바꿔놓고 상상해본다면 이 영화의 결론이 마냥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개같은 내 인생’과 ‘길버트 그레이프’ 등을 통해 인생의 누추한 단면을 달콤쌉싸름한 유머로 통찰하던 라세 할스트롬의 작품치곤 쌉싸르한 맛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영화내내 군침을 돌게 만드는 초콜렛의 성찬 앞에 아카데미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할스트롬은 이 작품으로 지난해 ‘사이더하우스’에 이어 2년 연속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주연을 맡았던 조니 뎁이 줄리엣 비노슈의 초콜렛 공략을 보기좋게 받아넘기는 집시청년으로 등장, 로맨틱한 분위기를 물씬 집어넣는다. 줄리엣 비노슈의 어린 딸로 등장하는 빅토리아 티비솔은 ‘뽀네뜨’에서 눈물 그렁그렁한 연기를 펼쳤던 소녀다.

비엔의 친구가 되는 노파 아만다역의 줄리 덴치와 감독의 아내인 레나 올린 등 조연의 연기도 빛난다.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