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카멜레온]
미국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와호장룡’은 서구인들을 겨냥해 동양적 외피를 취했을 뿐인 ‘문화적 카멜레온’”이라고 평했다. 미국과 영국에서와는 달리 무협 액션영화에 익숙한 중국 홍콩 한국 일본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영화사이트 ‘IMDB’에 미국 관객들이 올려놓은 ‘와호장룡’의 감상평을 보아도, “‘아서왕의 전설’과 ‘뮬란’을 섞어놓은 것같다” “액션과 서사, 비극, 드라마, 코미디가 모두 담겨있다는 점에서 ‘스타워즈’와 비슷하다”는 소감문이 곧잘 눈에 띤다.
의외로 동양의 이국적 정취때문에 재미있다는 소감문은 거의 없을 정도. 미국 관객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신화적 원형과 이 영화가 큰 차이가 없다고 받아들인다는 뜻.
미국 연예전문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도 ‘와호장룡’의 성공 이유에 대해 “동양적이라서기보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액션 장면들은 게임에 푹 빠진 아이들의 눈을 붙들어 놓고, 서사적 러브스토리와 강력한 여성 캐릭터는 성인들을 매료시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남성화되지 않은 여성 영웅]
미국 ‘USA 투데이’는 이 영화의 성공 이유를 “여성들이 연기한 액션 영웅들이 강인함을 여성성의 상실과 맞바꾸지 않고, 남성을 흉내내지 않는 ‘진짜 여성’들이기 때문”이라고 봤다.
남성화된 여성들이 사회에서 성공하던 과거와 달리, 여성성을 그대로 지녔으면서도 사회적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시대 추세와 맞아 떨어진다는 것.
‘와호장룡’이후 ‘미녀 삼총사’ ‘툼 레이더’ 등 무협액션을 선보이며 여성성을 강조하는 액션 영웅들이 속속 탄생하는 것에 대해서도 “무협액션은 야만적 폭력이 아니라 세밀하고 우아한 기교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배우의 액션영화 진출 폭을 넓혔다”고 분석했다.
[업그레이드된 액션과 사상]
미국 ‘뉴욕 타임스’는 ‘와호장룡’이 고전 영화들을 조금씩 재인용하는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줌으로써 창의력 고갈에 시달리는 할리우드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글래디에이터’는 ‘스팔타커스’나 ‘벤허’에서 본 듯한 장면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다듬었지만 ‘와호장룡’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 빠른 편집으로 격렬한 액션 효과를 만들어내는 할리우드 영화들과 달리 분열보다는 지속성을, 시각적 충격보다 우아함을 강조하는 액션의 매력이 미국 관객에게 어필했다는 평가다.
또 단순한 결말을 선호하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과 반대로, 합리적 인과관계보다 인생의 아이러니에 주목하며 집착을 버릴 것을 강조하는 이 영화의 사상이 서구에 풍미하는 후기구조주의의 사유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는 분석.
서구 관객들이 넋을 잃는 이 영화의 무협액션도 철학을 담고 있다는 것이 서구의 평가다. 영국 영화전문지 ‘사이트 앤 사운드’는 “브루스 리, 성룽(成龍)의 액션이 쿵푸에 기초해 외적인 힘을 강조한다면, ‘와호장룡’의 액션은 내면의 힘과 정신적 단련을 중시하는 무예이기 때문에 영화 전체를 사랑과 명예 운명에 대한 명상처럼 보이게 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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