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전진우/'거물 정치인'

입력 | 2001-02-26 18:33:00


1976년 3월18일 오전 일본 최고검찰청 회의실. 검찰 수뇌부는 미국 항공기 제작 판매회사인 록히드사의 로비 스캔들을 수사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의혹의 핵심은 일본 정치권력의 최고 실세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총리가 아닌가. 더구나 미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수사였다. 섣불리 대들었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검찰의 위신만 땅에 떨어질 것이 뻔했다. 논란이 이어지던 중 가미야 히사오(神谷尙男)도쿄고검장이 입을 열었다. “수사가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검찰이 망설인다면 검찰은 아마도 앞으로 20년간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수사를 결정짓는 한마디였다. 넉 달 후 다나카 전총리는 록히드사로부터 5억엔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정치의 벽, 국경의 벽 등과 맞선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들의 정의를 향한 열정과 검찰 혼(魂)이 이뤄낸 개가였다. 이 도쿄지검 특수부가 최근 또 한 사람의 거물 정치인을 정계에서 퇴장시켰다는 소식이다. 주인공은 전노동상이자 현 모리 내각 탄생의 ‘일등 공신’으로 불리는 무라카미 마사쿠니(村上正邦)참의원 의원. 그는 한 공익법인의 대학 설립을 지원해 준 대가로 자신의 사무실 임대료 2200만엔을 대학 설립자에게 대신 내게 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무라카미의원은 도쿄지검 특수부가 자신을 내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의원직을 사퇴했다. 현직 의원에게 보장되는 회기 중 불체포특권이란 방어 수단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버텨봤자 안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게 일본 언론의 해석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민국당 대표 김윤환(金潤煥)씨는 얼마 전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김씨가 공천 및 이권알선 대가로 33억5000만원의 돈을 받았다는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그가 ‘비중있는 정치인’이라는 점 등을 들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씨는 지금 여권과 정책 연합이니 연정(聯政)이니 하며 ‘거래’를 하고 있다. 김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 과정이 주목된다.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