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희 '포기라뇨,말도 안돼요'
프로농구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최근 경기를 보면 ‘일관된 흐름’을 느낄 수 있다. 한 경기씩 떼어 내 보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시즌 전체로 눈을 돌리면 보인다. 바로 하위권을 고수하겠다는 몸부림이다.
농구인들은 이를 두고 “일찌감치 실속 챙기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한다. 실속이란 바로 다음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쏟아질 ‘대어급’ 신인들. 서장훈에 버금간다는 2m5의 김주성(중앙대)을 비롯해 김태완(2m3·한양대) 정훈(2m·성균관대) 등 2m대의 토종 장신센터가 3명이나 프로의 문을 두드린다.
이 중 한 명만 잡아도 앞으로 ‘10년 농사’는 걱정 없다고 할 만한 선수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니 우승권 포진이 가망 없는 올 시즌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하위권으로 시즌을 마친 뒤 이들을 차지하겠다는 생각을 할 만도 하다.
이런 가운데 유독 기아의 행보가 주목을 받는 것은 97년 프로 원년 우승을 시작으로 지난 시즌까지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명문구단이기 때문이다.
기아가 시즌 ‘포기 의혹’을 사기 시작한 것은 순위 싸움이 한창이던 3라운드 후반. 3라운드 초반 3위를 되찾았던 기아는 1월초 미국의 가족이 강도를 당한 듀안 스펜서에게 귀국을 허용하면서부터 맥이 빠졌다.
중요한 시기에 팀 전력에 절대적인 용병을 경기에서 제외시켜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고 이후 기아는 4라운드 첫 경기부터 5게임을 연속 패하며 7위로 떨어졌다.
기아는 15일 꼴찌 동양 오리온스에마저 패하며 6위와의 승차를 4.5경기로 벌려 플레이오프 진출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물론 기아의 부진이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최근 스펜서를 퇴출한 것에서 보듯 용병농사 실패가 가장 컸고 주전과 벤치 멤버의 전력차가 심한 것도 한 요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농구 명가’ 기아호의 침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농구인들의 중론이다.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