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남북이산가족 단체상봉이 이뤄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 6층 밀레니엄홀과 평양 고려호텔은 가족들의 오열과 통곡으로 금세 눈물바다가 됐다. 수십년 만에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들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국군포로 가족들도 감격의 만남▼
온 겨레가 다시 부둥켜안고 울었다. 제3차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방문을 위해 각각 서울과 평양을 찾은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반세기 만의 만남을 이렇게 눈물로 맞았다.
서울을 떠날 때,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할 때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면 환한 미소로 맞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7남매 중 둘째로 26일 북에 사는 언니 낙희씨(76)와 여동생 영자(68) 영희씨(62), 남동생 안구(65) 안윤씨(60) 등 5명을 모두 만난 선우낙순(鮮宇樂淳·74)할머니의 기쁨은 남달랐다. 평양에서 교원으로 있던 남편이 1947년 월남하자 한살배기 아들을 업고 38선을 넘은 뒤 54년 만에 다시 만나는 혈육들이었기 때문.
동생 안구씨는 “자꾸 눈물이 난다”며 누나의 얼굴을 연방 쓰다듬었고 선우 할머니는 “맺혔던 한이 이제야 풀린 것 같다”며 이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선우 할머니는 아버지가 6·25전쟁 때 폭격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오열했다.
○…재가한 아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51년 만에 아내와 아들을 만난다는 기쁨에 들떴던 김치문 할아버지(79)는 아내 김계옥씨(70)가 상봉장에 나타나지 않자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감추지 못했다.
헤어질 때 만 9개월이던 아들 용균씨(51)와 동생 치섭씨(59)는 “아파서 못나왔다”고 위로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탓임을 모를 리 없다. 김 할아버지는 “남쪽의 아내가 만나서 기분 좋은 소리만 하라고 했는데, 나오지도 않았으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1951년 아내 임보비씨(71)와 결혼한 지 5년 만에 세살, 두살난 딸 강연씨(53)와 강옥씨(51)를 놓아두고 월남한 뒤 50년 만에 이들과 해후한 이기천씨(76·전남 나주시)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상봉장 테이블의 사과를 깎아 가족에게 먹여주기만 했다.
아내 임씨도 “찬찬히 뜯어봐야 남편인 줄 알겠다”며 이씨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작은 딸 강옥씨는 아버지가 깎아준 사과를 성큼 받아들고 한 입 깨물었지만 큰 딸 강연씨는 얼굴도 모를 때 헤어진 아버지가 낯설기만 한 듯 사과를 받자마자 탁자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딸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 이씨는 “큰딸은 나를 닮았고 작은딸은 제 어미를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저 양록이에요. 알아보시겠어요.”
북의 아들 손양록씨(55)는 51년 만에 만난 아버지의 팔을 연방 흔들어 보지만 치매에 걸린 손사정 할아버지(90·경기 고양시)는 그저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들의 안타까운 절규에 손 할아버지는 가끔씩 목소리를 알아듣는 듯 눈물을 글썽였지만 금세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른 데로 눈길을 돌렸다.
1·4후퇴 때 이모집에 맡겼던 막내아들 양록씨를 두고 남으로 온 손 할아버지는 생전에 막내아들을 만나야겠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왔지만 7년 전부터 치매증세를 보여 왔다.
남측 관계자는 “기억을 하다, 못하다 하는 증세를 보여왔지만 본인이 막내아들을 꼭 만나겠다며 방북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6·25 전쟁 당시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돼 남한에 남았던 ‘반공포로’들의 재북가족 상봉도 지난해 8월 1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이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 2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때는 반공포로였던 김준섭 박관선 염대성 이태훈 임경옥 최태현씨 등이 반세기 만에 평양을 찾아 가족들과 만났다.
이번 3차 이산가족 방문단 가운데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돼 남한에 살고 있는 김한전(70) 장형섭(78) 최인식(71) 최창환씨(70) 등이 포함돼 있다.
○…장정자(張貞子)단장 등 남측 대표단은 26일 오후 5시반경 평양시 중구역의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회를 방문, 장재언(張在彦)위원장 등 북적 관계자들을 만났다. 지난해 11월30일 이산가족 상봉단을 이끌고 서울을 찾은 장위원장과 2차 상봉 서울행사를 지휘한 장단장은 구면이다.
장단장이 서영훈(徐英勳)대한적십자사총재의 취임 사실을 전하면서 “서총재가 장위원장을 만나 이산가족 문제해결 등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하자 장위원장은 “서총재의 구상이 긍정적”이라면서도 즉답은 피했다.
scooop@donga.com
▼"형님 한달만 더 살아계시지…"▼
제3차 남북이산가족 단체상봉이 이뤄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 6층 밀레니엄홀과 평양 고려호텔은 가족들의 오열과 통곡으로 금세 눈물바다가 됐다.
수십년 만에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들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어머니 절 받으세요"
북측 아들 이강술씨가 노모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남측 상봉가족 중 최고령인 허계씨(92·여)는 북측방문단이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담배를 피우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해 의료진이 한때 긴장. 허씨는 아들 김두식씨(70)가 “어머니” 하며 반갑게 안기자 “이제야 돌아왔구나”라며 감개무량한 표정. 상봉시간 내내 모친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은 김씨는 “조금만 더 살아 계시면 제가 모시겠다”고 모친에게 건강을 당부.
○…북에서 내려온 최병희씨(73)는 큰형 형복씨(75)가 “드디어 동생을 만난다”고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다 지난달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졌다는 소식을 남쪽 가족들로부터 전해듣고 통곡. 최씨는 “형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날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냐”며 “상봉명단에 포함된 직후 형님 몸이 좋지 않았다는 연락은 받았으나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다. 한달만 더 사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오열.
○…북한 공훈예술가 정두명씨(67·평양시 낙랑구역 정백동)는 6·25 때 헤어진 어머니 김인순씨(89), 동생 두환(62·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두호(55·미국거주) 여동생 숙희씨(64·미국거주)를 얼싸안고 상봉의 한을 풀었다.
서울 출신 두명씨는 북한 취주악의 대가로 94년 김일성 영결식 때 연주된 취주악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편곡한 인물. 어머니 김씨는 치매증세를 보여 지난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아들을 51년 만에 만나는 것을 알고 있는지 두명씨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남측 상봉가족 중 최고령인 허계씨(92·여)는 북측방문단이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담배를 피우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해 의료진이 한때 긴장. 허씨는 아들 김두식씨(70)가 “어머니” 하며 반갑게 안기자 “이제야 돌아왔구나”라며 감개무량한 표정. 상봉시간 내내 모친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은 김씨는 “조금만 더 살아 계시면 제가 모시겠다”고 모친에게 건강을 당부.
○…이번 3차 방문단은 이전 1, 2차 방문단보다 두드러지게 ‘장군님 은덕’을 강조. 당초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막판 서울을 방문하게 된 고선휴씨(67)는 취재진이 “행운”이라고 말하자 “행운이라기보다는 장군님 은혜”라며 “우리 민족은 자체 힘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편 북한에서 온 오빠 정순석씨(67)를 만난 여동생 순남씨(61)는 북한 기자들 4명이 한꺼번에 인터뷰를 시도하자 살짝 웃는 모습으로 “북한에서 너무 너무 오빠한테 잘해줘서 오빠가 얼굴이 이렇게 좋아진 것 같다”며 “정말 너무 고맙다”는 말을 연발.
○…3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북측 가족이 준비한 선물은 술 옷감 그림 사진 등 대부분 1, 2차 상봉 때와 비슷한 물품. 방문자 한사람이 두 개 정도의 선물을 준비. 이에 비해 남한 가족이 준비한 선물은 꽃바구니를 비롯해 의약품 생필품 기념품 등 다종다양한 편.
○…이들은 2박3일의 일정을 보내게 될 호텔 10∼16층 숙소에 여장을 푼 뒤 호텔 32층 식당에서 반세기 만에 서울에서 첫 식사를 했다. 식단은 전복죽 호박죽 젓갈류 쇠고기볶음 등 한정식 뷔페로 차려졌으며 배추김치 백김치 오이소박이 갓김치 등 다양한 종류의 김치와 제주옥돔과 같은 지역특산물도 두루두루 준비.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