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학
프로야구 두산의 심재학(29)은 아직도 1999년 10월18일을 잊지 못한다.
27번째 생일인 이날, 그가 LG 구단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축하의 메시지 대신 “현대로 트레이드됐으니 짐을 싸라”는 말이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한 배신감이 들었다”며 당시 느낌을 전한다.
2001년 2월9일. 미국 플로리다 전지훈련중이던 심재학은 곤히 자고 있다 매니저의 전화를 받았다. 심정수와 맞트레이드됐다는 내용. 이땐 느낌이 어땠을까.
“처음엔 황당했다. 야구선수의 비애도 느껴지고…. 하지만 이제 트레이드는 구단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거라고 이해하고 신경쓰지 않는다. 선수는 어디서 야구를 해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만큼 심재학은 성숙해 있다. “심정수 같은 좋은 선수와 맞트레이드됐다는 사실이 영광스럽다”고 말할 정도다.
플로리다에서 곧바로 하와이로 날아가 참가한 두산 스프링캠프. 10여일간 그와 훈련한 동료들은 ‘모범생’이라고 추켜세운다. 운동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땀을 흘리고 훈련이 끝나면 배팅 케이지를 옮기고 공을 줍는 등 ‘허드렛일’을 돕는 데 앞장선다.
25일 두산 유니폼을 입고 처음 참가한 자체 홍백전. 심재학은 2루타 1개를 포함해 3타수 2안타 2득점의 맹타를 때렸다.
그는 선수단 휴일인 23일엔 오랜 전지훈련으로 용돈이 궁해진 후배들을 데리고 나가 점심을 한턱냈고 충암고 5년 후배인 박명환에겐 티셔츠도 선물했다.
확실히 95년 갓 프로에 데뷔했을 때 보던 심재학과는 많이 달랐다. 충암고―고려대와 국가대표 4번타자를 거쳐 LG 트윈스에 입단한 엘리트, 스포츠카 포르셰를 몰고 다니는 스타의 모습이 아니었다. 프로의 냉혹한 생리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잘 아는 선수로 변해 있었다. 이젠 차 없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후배들 일에 앞장서는 심재학. 그는 올해 ‘심정수만큼의 성적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트레이드되자마자 두산 팬들이 ‘밑지는 장사’라며 구단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던 일을 기억하기 때문.
“팬들이 잘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더 좋은 플레이를 보여줘야 할 것 같다.”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