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죽는 일은 있을 망정 패배하진 않는다.”
쿠바의 한적한 어촌을 무대로 한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의 말이다. 그는 84일간 단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하다 사흘 밤낮에 걸친 사투 끝에 대어를 낚는다. 그러나 상어떼의 공격으로 5m가 넘는 그 물고기는 뼈만 남는다.
독일 감독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Buenavista Social Club)은 현대판 산티아고 노인들의 이야기다.
‘쿠바의 냇킹 콜’이라 불린 가수였지만 반평생을 구두닦이로 살아야했던 이브라헴 페레(74). 수줍은 미소 뒤에서 영혼을 사로잡는 피아니스트지만 여든이 다 돼서야 첫 솔로음반 을 낸 루벤 곤잘레스(82). “내 나이가 아흔인데 여섯째를 낳으려는 중이야”라며 시들 줄 모르는 정열을 과시하는 콤파이 세군도(94).
이들은 1930, 40년대 쿠바에서 전성기를 누린 ‘손’ 음악의 대가들이다. 손은 관능적인 아프리카 리듬에 카리브해의 서정적 선율이 어우러진 장르. 하지만 이들은 쿠바혁명이후 뿔뿔이 흩어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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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찾아낸 것은 벤더스의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애절한 라틴 비트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프로듀서한 라이 쿠더. 96년 몇십년만에 쿠바를 다시 방문한 그는 ‘장밋빛 모퉁이’에 숨어있던 이들을 다시 찾아내 앨범을 한 장 냈다.
이들이 음악을 연주했던 고급 사교장의 이름을 딴 이 앨범은 97년에만 2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들의 전세계 순회공연은 연일 매진됐고 그래미상 수상과 카네기홀 공연까지 이어진다.
벤더스는 디지털카메라로 쿠바의 수도 아바나와 암스테르담, 뉴욕 등에서 이들의 인터뷰와 공연을 찍은 뒤 이를 편집한 영화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이 영화가 지닌 미덕은 여러가지이다. 타고난 재능을 지니고도 수십년의 무명 세월을 보내야했던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에 담긴 의외의 소박함과 진솔함. 아바나 거리에 걸린 ‘우리에겐 꿈이 있다’는 빛바랜 문구에서 느낄 수 있는 자존심. 존 웨인과 레이 찰스, 마릴린 먼로 등 미국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인형이 누군지 몰라 천진난만한 농담을 나누면서도 카네기홀에 쿠바 국기를 휘날리게 만들 수 있는 예술적 저력 등 등.
하지만 이 영화의 최대 미덕은 어깨를 들썩이고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그들 음악을 가사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글라디올라와 장미와 흰 백합/그리고 슬픔에 잠긴 내 영혼/내 슬픔을 꽃들에게 알리고 싶지않네/눈물을 보면 죽어버릴테니까.’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샴페인 한잔을 꼭 권한다. 3월1일 개봉. 전체 관람가.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