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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화제]스포츠맨은 직업 선택 자유도 없나?

입력 | 2001-02-26 19:25:00


공정거래위원회는 21일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의 야구규약과 통일계약서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는 스포츠와 법률이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스포츠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의 실상은 어떤지, 스포츠와 법의 바람직한 만남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본다.

프로스포츠 세계에서는 통상적인 법 이 제대로 통용되지 않는다.

프로야구 규약은 선수와 구단의 관계 및 지위 등을 정하고 있다. 선수들의 참여없이 구단주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이 규약에서는 근대 사법(私法)의 기본원리인 '직업선택의 자유' 와 '계약자유의 원칙' 이 지켜지지 않는다. 법의 일반원리가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국내 스포츠 제도 제언
-95년 '보스만 판결' 선수이적 자유 인정

규약 제2조는 프로야구에 입문하는 신인 선수도 이 규약의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조항과 드래프트(구단의 추첨에 의해 신인 선수를 선발하는 것) 제도를 규정한 제101∼112조에 따라 신인 선수는 특정구단에서 지명을 당하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선수계약도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정한 통일계약서에 의해 하도록 되어 있으며 당사자간 합의에 의해서도 내용을 변경할 수 없다.

야구규약 제6장은 구단의 보류기간 내에 선수는 다른 구단과 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보류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구단은 선수를 버릴 수 있어도 선수는 구단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트레이드(선수 방출) 제도도 선수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구단은 선수를 일방적으로 다른 구단에 넘길 수 있는 반면 선수가 이를 거부하면 임의탈퇴 선수가 되거나 실격 선수가 되어 야구계를 떠나야 한다.

이 때문에 선수와 구단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프로야구 현대 소속의 임선동선수는 96년 자신을 지명한 LG 트윈스 입단을 끝까지 거부하며 법정 투쟁을 벌였다. SK소속인 강혁선수는 고교졸업 당시 프로야구 OB(현 두산)구단과 입단계약을 맺었다가 이를 파기하고 대학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프로야구에서 영구 제명당했었다.

'국보급 투수' 로 불렸던 선동열선수(전 일본 주니치 소속)도 95년 일본 프로야구 진출 당시 "풀어줄 수 없다" 는 해태구단과 맞서 갈등을 겪었다.

프로축구와 프로농구 등 다른 스포츠의 법률관계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드래프트와 트레이드, 보류제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프로야구와 비슷하다. 최근에는 대학배구 최고의 스타인 이경수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한양대 송만덕 감독이 드래프트제도의 불합리성을 언급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스포츠와 법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올해 초 정부의 중재로 수습된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파동과 프로야구 규약 및 통일계약서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KBO 등 구단측 관계자들도 '유치(幼稚)산업 보호론' 을 거론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스포츠가 아직까지는 자생력없는 유치산업에 불과하므로 선수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등의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99년 12월에는 한국스포츠법학회(회장 연기영·동국대 법대 교수)가 창립돼 스포츠와 법학을 접목시키는 첫 학문적 시도가 이뤄졌다. 국내 법학자와 체육학 교수, 스포츠 관련 종사자 등 200여명이 결성한 이 학회는 지난해 12월 '스포츠산업의 발전과 법적 대응'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열기도 했다.

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