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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게 이렇군요]한나라 의원들의 계좌추적 경험사례

입력 | 2001-02-27 19:33:00


요즘 상당수의 한나라당 의원이 ‘계좌추적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26일 국회 정무위에서 “내 주변 사람 28명의 계좌를 마구잡이로 뒤졌다”고 주장한 데 대해 많은 의원이 “남의 일이 아니다”며 동조하고 있다.

▼40%가 "추적당했다"▼

27일 한나라당 의원 41명을 접촉한 결과 그 중 40%가 넘는 17명이 본인이나 친인척 등 주변 사람들이 이미 계좌추적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17명 중 11명은 96년 15대 총선 당시의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리스트에 올라 있으나 전국구 의원 2명을 포함한 나머지 6명은 “영문을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의 A의원은 “지구당의 여직원이 마을금고에서 2000만원을 대출 받은 일이 있었는데 검찰 직원이 찾아와 15대 선거 때 쓴 돈이 아니냐며 추궁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결혼한 뒤 그만둔 다른 여직원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는 것.

대구의 중진 B의원은 “올해 초 지구당 사무국장과 직원, 선거운동원 등 내 주변인사의 계좌 여러 건이 추적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표에 배서한 이유가 무엇이며 무슨 돈이었느냐는 것을 집중 조사 받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가족들의 피해를 호소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경북의 C의원은 “작년 총선 때 상대 후보측으로부터 금품살포혐의로 고소당했는데 선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형제들의 계좌까지 마구 추적해 집안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의 D의원은 “지난달 은행에서 딸의 계좌를 추적했다는 통보서가 날아와 딸이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사업하는 친구들이 피해를 본 사례도 많았다. 부산의 E의원은 “지구당 비서의 사업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와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간 경위를 물은 뒤 나(E의원)와 관련된 돈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흥분했다.

부산의 F의원도 “사업하는 친구가 나에게 얼마를 줬느냐는 추궁을 당했는데 안기부자금 사건을 조사한다는 핑계로 다른 건을 찾아내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만둔 부하직원도 조사"▼

경남의 G의원은 “얼마 전에 사업하는 친구가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어떤 게 내 수표인지를 조사했다고 하더라”며 “소문이 나면서 주변의 사업하는 사람들이 나를 만나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밖에도 “작년 후반기쯤 금융기관으로부터 영장도 없이 내 주변 인사의 계좌를 추적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경남 H의원), “국세청 직원이 친척에게 이러이러한 돈이 어디서 난 것이냐고 물어왔다고 하더라”(경기 I의원), “15대 때 선거운동을 도와준 옛 직장의 부하직원이 얼마 전에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전하면서 조심하라고 귀띔해 줬다”(경북 J의원)는 등 비슷한 얘기가 많았다.

전국구 의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K의원은 “주변의 사업하는 친구들이 계좌를 추적 당하고 세무조사까지 받았다”며 “아내가 장모에게 맡겨둔 돈이 있었는데 장모의 계좌까지 뒤졌다고 하더라”고 전했고 L의원은 “내 명의로 돼있는 계좌는 다 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의 M의원도 “보좌관의 계좌를 뒤졌다는 통보서가 최근에 왔다”며 “나는 안기부자금사건과는 관계가 없는데 무슨 일 때문인지 확인도 안된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들은 “계좌추적을 당한 사실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괜히 비리가 있는 것처럼 오해를 받게 되는 데다 소문이 나면 후원자들도 다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