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는 끝내 침몰하고 마는가. 일본경제의 현재 시각이 끝내 15년 전으로 되돌려졌다.
일본 도쿄증시의 닛케이225평균주가는 28일 1만2883.54엔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전날보다 176.32엔이 하락한 것이며, 지난 85년 이후 15년만의 최저치에 근접한 것이기도 하다. 장중 한때에는 최저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일본경제의 안전판 구실을 해온 무역수지의 적자반전을 비롯, 10년간의 장기불황, 극심한 정치불안과 10년간의 장기불황, 기업들의 도산사태가 일본경제를 후퇴시킨 것이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한때 미국과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다투며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던 일본경제는 어디로 가는가.
◆3월 금융대란설 현실로 나타나나
닛케이평균주가 1만3000선이 깨진 것은 일본경제에 있어서는 그동안 국제금융시장에서 유포됐던 '3월 금융대란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일본의 16개 은행이 오는 3월말 결산에서 청산해야 할 부실채권은 2조엔 이상에 달한다. 증권투자를 자본금에 포함시켜온 오랜 관행 때문에 증시가 살아나지 않을 경우 해결방법이 없다.
물론 일본은행들이 총 14조엔을 상각처리했던 지난 1998년보다 심각성은 덜한 편이지만, 부실채권을 털어낼 밑천은 영업이익 밖에 없다는 점에서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주가하락에다 부동산시장의 침체는 각 기업들의 자산가치를 추락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신용등급도 동반 하락, 충당금을 마련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이 상황에서 금융청은 대출 심사기준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여서 이래저래 힘든 형편이다.
따라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빈사상태의 기업들에 빌려준 돈은 대형 참사를 격발시킬 뇌관이 되고 있다.
무려 2조4000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 있는 다이에, 아오키건설 등은 금융대란을 일으킬 수 있는 대형 뇌관이라는 게 현지의 경제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경제의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닛케이평균주가는 1만3000선이 깨져버렸다. 작년 한때 2만을 넘어서던 평균주가가 1년도 채 안돼 약 42%나 폭락한 것이다.
이같은 주가 수준에서는 16개 은행 가운데 8개 은행의 주식평가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1만3000선이 붕괴됨에 따라 주식투자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은행은 도쿄미쓰미비 등 4개 은행에 지나지 않는다.
주가가 떨어지면 보유주식의 자산가치가 감소해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급증하기 마련이다. 자연히 수지가 악화돼 부실채권 처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늘어난 부실채권은 은행의 건전성과 신뢰도를 깎아 내리고 기업자금 공급원 역할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현지의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의 16개 대형 시중은행이 3월말 결산에서 털어내야 할 부실채권 규모를 지난 1월말 2조4000억엔으로 예상했으나 주가가 폭락함에 따라 예상치를 2조5천4000억엔을 크게 상향시켰다. 일부에서는 극단적으로 4조엔에 달할 수도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으며 공황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일본은행(BOJ)이 28일 정책이사회를 열고 초단기금리와 재할인율을 각각 0.10%포인트씩 기습 인하한 것도 금융권의 부실채권을 해소, 시장의 공황심리를 잠재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일본경제의 아킬레스-유동성 함정과 주가하락
일본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온 국민이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유동성 함정은 말그대로 통화정책의 변경 등 금융당국의 어떤 조치에도 국민들이 반응하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다.
일본국민이 유동성 함정에 걸려든 것은 오랜 숙원과제였던 금융시스템이 복원되지 않아 금융부실 규모는 날로 늘어난 때문이다. 물가를 감안하면 실제 금리는 마이너스 수준임에도 국민들은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원인에서 비롯됐다.
특히 국채발행 등 지난 93년 하반기 이후 계속된 부양조치로 국가채무가 국민소득(GDP)의 1백32%에 달하고 있어 동원할 금융정책도 별로 없는 게 일본경제가 당면해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의 폭락은 일본경제계를 불안의 구렁텅이로 내몰 수 있다.
도쿄증시의 급락은 '역(逆)부의 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은행과 기업이 갖고 있는 자산이 감소하다보니, 설비 등 투자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개인 역시 씀씀이(소비)를 줄이고 있다.
가장 심각한 점은 신용경색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가가 곤두박질치면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인해 어느 기업이든 신주발행이 어려워지면서 돈줄이 막힌다. 은행들로서도 리스크 헷지를 위해 기업에 대한 신규융자를 최대한 자제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엔/달러 환율 주목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이 경쟁력에 비해 금융부실로 인해 마땅히 도입할 정책이 없는 만큼 엔화의 약세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3월 결산을 앞두고 해외 법인들의 달러송금으로 상대적으로 엔화수요가 증가, 달러당 116엔대에 움직이고 있지만 언제라도 달러당 120엔대까지 치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증시에 참여하고 외국인 투자가들의 달러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있어 이같은 가능성을 뒤받침하고 있다.
최근 엔/달러 환율과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거의 '1'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본에서 자금이 이탈할 경우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그럴 개연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일본 시장에 대한 신뢰가 낮아짐으로써 일본을 비롯해 한국 등 아시아 전체 지역에서 자금이 동반 이탈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엔화약세가 지속되거나 급속히 나타날 경우 원화가치의 동반하락을 초래, 환차손을 의식한 외국계 자본의 한국 이탈 속도도 가속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행히 일본의 재정적자가 어제 오늘의 현상도 아니고, 이미 지난 98년11월 또다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일본의 투자등급을 Aa1으로 하향 조정한 사례가 있어 S&P의 등급조정이 당장 일본경제와 한국경제에 충격을 주지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방형국bigjo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