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의원과 언론사 간부들에 대한 불법 계좌 추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 없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계좌 추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포증을 느낄 정도라며 검찰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의 무차별 계좌 추적과 그 위법성을 지적하고 있다.
엊그제 본보 취재팀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접촉한 결과 40% 정도가 본인은 물론 친인척 등 주변 사람들이 이미 계좌 추적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중에는 ‘안기부 자금 리스트’에도 오르지 않은 전국구 의원 등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보도다. 요컨대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이들이 전하는 계좌 추적 행태를 보면 말문이 막힌다. 지구당 여직원과 장모, 사업하는 친구 등 닥치는대로 계좌를 뒤지는가 하면 때로는 세무조사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범죄 수사나 탈세 조사 등의 필요에 따라 관련 기관에서 계좌를 추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도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계좌 추적은 곧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이른바 연결 계좌 등에 대해서도 추적을 허용하는 포괄적인 영장은 발부하지 않고 조사 대상 계좌를 명시해야만 영장을 발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데 문제는 법원의 영장 없이도 계좌 추적을 할 수 있는 국가기관이 여럿이고 이런 곳에서는 특히 법적인 권한을 남용할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에서 계좌 추적을 할 때는 영장이 필요하지만 국세청 금융감독원 공직자윤리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 등은 영장 없이도 관련법에 따라 추적이 가능하다. 금감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연간 20만건이 넘는 계좌 추적 가운데 법원의 영장에 의한 것은 10%도 안된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국세청이 신문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부장급 이상 간부 명단과 주민등록 번호를 확보했음을 사실상 인정하고 필요하면 개인 계좌도 조사할 수 있다고 밝힌 대목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계좌 추적이 악용될 소지는 없는지 모르겠다.
금감원 직원의 상시적인 검찰 파견도 문제다. 검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들이 검찰의 필요에 따라 영장없이 계좌 추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계 기관은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을 규정한 실명제법의 기본 취지를 망각해선 안된다. 계좌 추적은 그야말로 금융거래 비밀보장에 대한 예외적인 조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