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남우조연상 등 5개부문 후보에 오른 ‘트래픽(Traffic)’은 26세에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부상한 스티븐 소더버그가 영화 문법에 얼마나 능숙하고 영리한지를 보여주는 ‘감독의 영화’다.
제목이 마약 밀거래를 뜻하는 이 영화에서 소더버그는 각각 분리된 네 개의 이야기를 이음매 자국 없이 매끄럽게 연결해 ‘마약에 찌든 미국’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축조해내는 데에 성공했다.
멕시코 마약조직과 권력의 뒷거래에 얽혀들어 갈등하는 멕시코 경찰관 하비에르(베니치오 델 토로). 고교생인 딸 캐롤린(에리카 크리스텐슨)이 마약중독자임을 뒤늦게 알게 된 미국 대통령 직속 마약단속국장 로버트(마이클 더글라스). 마약 밀거래 조직의 거물인 남편을 구하기 위해 증인을 살해할 암살자를 고용하는 헬레나(케서린 제타 존스). 잠복근무로 세월을 보내는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 몬텔(돈 치들).
수많은 등장인물들에 카메라는 멕시코에서 미국 오하이오로, 샌디에고에서 워싱턴으로 복잡하게 오가지만, 소더버그는 ‘매그놀리아’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처럼 다양한 시공간과 인물을 하나의 응집된 이야기로 집약시키는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서로 다른 컬러 필터를 사용해 공간마다 독특한 느낌을 부여한 촬영방법도 효과적이고, 카메라를 직접 손에 들고 찍은 촬영술은 영화에 다큐멘터리적 질감을 부여하며 현실과 근접해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영화의 주제는 아주 선명하다. 멕시코 뒷골목에서 미국의 상류층까지 마약 거래가 거대한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미국에 협조하는 대가로 “아이들이 마약을 팔지 않아도 되도록 야구장에 불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멕시코 경찰이나 가족의 사랑에 힘입어 재활에 성공하는 캐롤린의 경우에서 보듯, 마약과의 전쟁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너무 깔끔하게 만들어진 탓일까. ‘트래픽’은 연출솜씨에 탄복할지는 모르나 감정적 파장이나 공감, 드라마틱한 재미를 기대하긴 어려운 영화다.
미국에서는 10대 자녀를 둔 중산층 부모의 위기감을 자극하며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마약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국내에서 그같은 성공이 가능할지는 미지수. 고른 수준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가운데 멕시코 경찰 역의 베니치오 델 토로와 캐롤린 역을 맡은 에리카 크리스텐슨의 연기가 돋보인다. 터키에서 유럽으로 마약이 반입되는 과정을 그린 영국 TV시리즈 ‘트래픽(Traffik)’이 원작. 10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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