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의 분식회계로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진행중이고 동아건설이 과거 분식을 자백함으로써 분식회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분식에 대해 정부가 아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고 말해 향후 분식결산에 대한 정부의 강도 높은 처벌을 예고했다. 그러나 그 같은 대통령의 의지가 지켜지려면 몇 가지 전제가 요구된다.
분식회계란 기업이 결산과정에서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행위로 대부분 금융대출을 쉽게 받거나 주가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 이뤄진다. 조작된 분식장부만 믿고 돈을 빌려준 은행이나 선량한 투자가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분식은 악질적 사기행위에 속한다. 특히 일부 회사의 고의적인 분식 때문에 기업도산 후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국민경제가 어려워진 현실을 보면 분식 근절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분식은 이미 우리 기업에 만연된 고질적인 병폐이기 때문에 그 관행을 뜯어고치는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100개 상장기업 가운데 약 3분의 1이 과거 11년간 분식을 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것만 보아도 상황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다. 과연 김 대통령이 말한 대로 ‘정부가 안 이상’ 이들 기업 모두에 대해서도 대우 임직원에 대한 것과 동등한 처벌을 할 수 있을까.
분식이 기업과 금융기관, 그리고 회계법인의 묵시적 동조 아래 빚어진 것이라면 근절은 더욱 어려워진다. 관치 금융 시절 대출 압력을 받은 은행이 해당 기업에 대해 회계장부를 대출기준에 맞도록 고치라고 요구한 경우가 허다하고 그 기업에 우호적인 회계법인이 형식적 감사만 한 경우 지금 누가 그 잘못을 드러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한번 분식을 하면 그 기업은 다음해에도 전 해의 분식분 만큼 다시 장부를 속이지 않을 수 없는데 과연 그것을 용기있게 단절할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될지 현실적으로 의문이다.
물론 드러난 분식에 대한 엄격한 처벌은 당연하다. 그러나 처벌과 함께 중요한 일은 기업이 과거의 분식과 단절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경직된 회계감사 때문에 부정적 의견을 받는 기업이 쏟아져 주식, 채권시장의 대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