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3점홈런을 친 최희섭(가운데)이 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Choi, go!” “I’m ready.”
그 감독에 그 선수였다. 영어가 서투른 한국인 선수를 상대로 짧고 간결한 말로 용기를 북돋워준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컵스의 돈 베일러감독. 유창하지는 않지만 또박또박한 말투로 힘차게 대답한 루키 최희섭(22). 둘 다 ‘오늘의 베스트’였다.
2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스프링캠프가 있는 애리조나 피닉스의 스캇데일 스타디움.
시범경기 개막전에 참가하기 위해 이웃 도시 메사에서 건너온 ‘겁없는 아이’ 최희섭은 대타로 잡은 딱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외 3점홈런포를 쏘아올리며 메이저리그를 경악시켰다.
이날 경기는 오로지 최희섭을 위해 짜여진 각본. 최희섭은 이미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 1루 경쟁자인 매트 스테어와 론 쿠머의 그늘에 가려 벤치를 지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1―1로 맞선 6회 1사후 두 타자가 연속안타를 치고 나가자 베일러감독의 대기령이 떨어졌다. 다음 타석인 조 지라르디의 안타 때 1점은 올렸지만 1루주자가 3루에서 횡사하는 바람에 2사가 돼 최희섭의 출장은 무산될 뻔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음 타자인 토드 던우디가 좌전안타를 쳤고 최희섭의 첫 출장은 이뤄졌다.
타석에 선 최희섭은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의 두 번째 투수인 마크 가드너의 초구는 시속 149㎞의 무시무시한 강속구였지만 몸쪽으로 약간 낮게 들어오는 스트라이크성 직구였다.
최희섭의 방망이는 바람개비처럼 돌아갔고 ‘딱’하는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공은 스캇데일 스타디움의 가장 긴 쪽인 우중간 펜스의 잔디밭 관중석을 지나 주차장 너머로 사라졌다. 공식계측은 없었지만 펜스 거리가 430피트(약 131m)니까 적어도 150m는 됐을 것이란 게 현지의 관측.
구장을 가득 메운 5335명의 관중은 물론 양팀 선수단은 한 순간 넋을 잃었고 베일러감독을 비롯한 시카고 컵스 선수단은 최희섭이 홈 베이스를 밟고 나서야 그의 헬멧과 엉덩이를 두드리며 축하의 기쁨을 나눴다.
지난해 11승7패 평균자책 4.05를 기록했고 메이저리그 통산 94승88패로 올해 대망의 100승을 바라보는 백전노장 가드너는 공교롭게도 이날 39번째 생일을 맞이했지만 풋내기 최희섭의 한방에 ‘쥐구멍’을 찾아야 했다.
최희섭은 6회말 수비 때 곧바로 투수 펠릭스 에레디아로 교체됐고 시카고 컵스가 6―5로 승리했다.
“시범경기 기간 중 조만간 선발출전시키겠다”는 베일러감독의 약속을 받아낸 최희섭은 3일 홈구장인 메사의 호호캄파크로 옮겨 샌프란시스코와의 2차전에 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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