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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2년생 징크스에 울뻔 했네!

입력 | 2001-03-04 17:53:00


감독님, 어깨부터 배 근처까지 묵직한 것이 아무래도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꾀병인줄 알았더니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도대체 완쾌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지난해 신인왕 출신인 SK 이승호(20)가 호주에서 복통을 호소했다. 다행히 공을 던지는 어깨가 아니라 오른쪽 부위(이승호는 좌완이다)라 한시름 놓았지만 몸의 절반 가량이 아프다고 글러브를 벗어 던지는데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승호가 누군가. 이제 2년차 투수지만 지난해 꼴찌 SK의 기둥 아닌가. 빈약한 팀 마운드 사정 탓에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10승에 20세이브 이상을 거뒀고 올해에도 변함없이 그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 팀의 주축이 전훈 중반부터 나자빠졌으니….

강병철 감독과 코치들이 안절부절하며 시드니 인근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검진 결과는 어깨 근육염. 그러나 이게 참 이상했다. 어깨뿐 아니라 복통까지 호소하는데 근육염이라니? 다시 검사한 결과 청천벽력 같은 통보가 날아들었다. 만성맹장염으로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진단까지 내려진 것.

수술할 경우 프로야구가 개막되는 4월에는 출장이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강병철 감독의 뇌리에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묘한 징크스가 떠올랐을 게 틀림없다. 롯데감독을 역임하던 84년과 92년 강감독은 두 차례 모두 한국시리즈에 올라 패권을 거머쥐었다. 그 당시 한국시리즈서 펄펄 날던 선수들이 고졸 신화를 창조했던 윤형배(현재 은퇴)와 염종석(현 롯데)이었다. 윤형배는 92년 시리즈서 ‘깜짝승’을 거뒀고 염종석은 그해 신인왕을 차지하며 강감독에게 두번째 우승을 안겨준 바 있다. 그러나 그 다음해에는 부상으로 10승 대 이하로 떨어졌고 계속된 잦은 부상으로 몇 차례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창단 2년째에 4강 진출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호주 전훈 캠프를 차렸는데 주축 투수가 부상이라니…. 불의의 부상이든 혹사이든 간에 감독들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 중 하나가 “저 감독이 팀을 맡으면 선수들의 개점휴업이 갑작스레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강감독은 결국 이승호를 조기 귀국시켜 정밀진단을 다시 한 번 받아보도록 했다. 첫번째와 두번째 검진 결과가 달랐으니 세번째도 다를지 모르고, 혹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지난주 강감독은 이승호가 입원한 인천의 모병원에서 안도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근육염도 맹장염도 아닌 만성장염이라는 게 한국 의료진의 최종 검진 결과였던 것. 공포의 일주일을 보낸 강병철 감독의 얼굴에 한줄기 햇살이 환하게 찾아든 순간이었다.

정작 수술을 모면하게 된 이승호의 반응은 노심초사하던 강감독의 혀를 끌끌차게 만들었다. 우측어깨 근육염이라는 첫번째 진단 결과를 받은 뒤 연신 얼굴을 찡그린 채 전훈에 참가했던 이승호는 만성맹장염이라는 두번째 오진이 나오자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귀국 후 만성장염이라는 최종 진단, 즉 수술 없이 약물 치료만으로 회복이 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오자 곧바로 “호주 전지훈련에 합류하겠다. 가서 시즌 준비를 위해 몸만들기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구단 프런트에 생떼를 썼다는 후문이다. 오진에 오진을 거듭한 호주 의료진만큼이나 미욱스러운 제자임에 틀림없다. 이승호는 지난주부터 언제 아팠냐는 듯 인천 잔류군캠프에 나와 캐치볼을 하며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