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권의 차기주자들 간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영남후보론’의 실체는 묘하다. 여권 내에서 영남후보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민국당 장기표(張琪杓)최고위원이 1월26일 ‘DJ(김대중·金大中대통령)가 영남사람인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를 대선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을 공개거론한 것이 논쟁을 촉발한 직접적 계기가 됐다. 민국당에서 지핀 불이 여권으로 옮겨붙은 셈이다.
논쟁의 양상 또한 묘하다. ‘영남후보’로 지목된 김대표조차 공식적으로는 영남후보론을 비판하고 있다.
▼찬반론▼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영남후보론은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라며 “어디 출신이든,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김근태(金槿泰)최고위원은 2일 대전의 한 강연회에서 “영남후보론 역시 지역주의에 편승한 개념으로 나는 지역주의를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발언은 1차적으로 김중권대표에 대한 견제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김대표는 정작 “가장 중요한 경제 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동의가 필요한 시점에서 영남후보론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들 외에는 영남후보론을 공론화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반면 민국당 관계자들은 공공연하게 영남후보론을 거론하고 있다. 특히 김윤환(金潤煥)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언급할 정도다.
▼비판론▼
한나라당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조차 영남후보론 논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크게 두가지 관점에서다.
하나는 대선전략을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해서야 되겠느냐는 것. 민주당 심재권(沈載權)의원은 “우리 사회의 첫 과제가 지역갈등 치유인데 그런 상황에서 지역을 앞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국가적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벌써부터 대권논쟁이나 하는 것은 해당행위”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인사들은 대체로 “여당이 급하니까 영남후보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영남 사람이 후보가 된다고 해서 영남의 반(反)DJ 정서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등의 냉소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내심 신경을 쓰는 눈치다.
한 당직자는 “민주당에서 영남후보가 뜨면 이인제 최고위원이 반발하게 돼 우리로선 좋은 점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당 차원에서 보다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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