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굵직한 사진 전시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사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사진의 예술성에 대해 국내 미술계가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 가운데 ‘이정진 사진전’(24일까지 서울 사간동 국제갤러리· 02―735―8449)은 주목되는 전시회 가운데 하나. 작가는 적막한 해안이나 도시의 어두운 거리 등 발길 닿는 풍경을 서정적 기법으로 표현한 ‘길 위에서’ 연작, 바다 수면의 잔잔한 물결이나 바닷가의 기와지붕 등을 초현실적 이미지로 나타낸 ‘바다’ 연작 등을 보여준다.
그는 한지(韓紙) 위에 인화하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사진 이미지가 한지에 스며들어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이같은 작품으로 뉴욕 파리 등에서 이미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갖는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호주 원주민 출신의 사진작가 트레이시 모팻의 사진전 ‘열광’(4월15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02―733―8945)은 인종, 성, 계급 등 사회 정치적 문제를 고발하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시골을 벗어나 도시를 가고자 하는 한 여인의 좌절을 그린 ‘무엇인가 더’, 백인 여주인과 아시아인 하녀의 성적(性的) 계급적 갈등을 그린 ‘아편제’ 등 6개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아편제’에서 19세기 사진요판술 기법을 사용해 현실과 꿈이 흐릿하게 이어지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살아있는 전설―매그넘 사진대전’(10일부터 4월8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580―1612)에서는 세계적 프리랜서 보도사진작가들로 구성된 사진가단체 ‘매그넘(Magnum)’의 회원 50명이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지구촌 전역을 누비면서 역사현장을 기록한 사진 451점이 전시된다. 베를린 장벽붕괴, 천안문사태, 걸프전쟁, 센트럴파크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뉴요커 등 매그넘 작가들은 예술과 저널리즘의 경계를 넘나든들며 ‘이것이 현실이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70년대 초 강원도 산간마을을 담은 강운구의 ‘마을 3부작’전(25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02―720―5114), 프랑스 사진가 으젠 앗제(1857∼1927)의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 서울에서 사라져 가는 거리와 풍물들을 포착한 ‘앗제가 본 서울’전(13일까지 서울 인사동 하우아트 갤러리·02―720―4988, 관훈동 갤러리 룩스·02―720―8488)도 볼만한 사진전들이다.
사진비평가 이영준씨는 “최근 사진을 그림과 다를 바 없는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사진작품도 거래가 이뤄질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다”고 평가하면서 “그러나 국내 사진작가들은 주제의 폭이 매우 넓은 외국작가와는 다르게 감성적인 주제에만 매달리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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