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李漢東)총리는 6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KBS1TV의 인기 사극 ‘태조 왕건’ 방영 100회 축하연을 찾았다. 이총리는 오래 전부터 드라마 제작팀에 “저녁을 한 번 사겠다”고 했으나 제작팀이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100회 축하연을 맞아 이총리를 초청한 것.
이총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고려는 최초로 자주적인 힘으로 국가를 통일한 중부 정권”이라며 ‘제2의 왕건’이 되겠다는 뜻을 내비쳐 왔다. 연초 주변의 모 인사가 “이젠 차기 구상을 보일 때”라고 건의하자 이총리는 극중의 왕건처럼 “그런 소리는 일절 입에 담지 말라”며 몸을 낮췄다는 전언이다.
▼"아지태같은 사람"▼
97년 ‘용의 눈물’이 그랬듯이 ‘태조 왕건’도 정치권에선 단순한 드라마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데 인용되고 있다는 점.
한나라당은 요즘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를 극중 인물인 ‘아지태’에 빗대 ‘김지태’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4일에는 언행 비교표까지 만들어 취임 이후 ‘강한 여당론’을 주창해 온 김대표를 궁예에게 철권 통치를 건의한 아지태와 동일시하려 했다.
민주당도 이에 발끈, 5일 “감사원장과 국무총리, 대권 후보까지 시켜준 주군을 버린 일을 두고 우리가 (이회창·李會昌 총재를) ‘아지태 닮았다’고 하면 얼마나 불쾌하겠는가”라며 역공을 시도했다.
▼이총재-김대표는 불참▼
이회창총재와 김중권대표는 처음엔 제작팀의 초청을 수락했으나 ‘미묘한 분위기’ 탓인지 곧바로 축하연 참석을 취소했다는 게 KBS측의 설명.
이 때문인지 축하연에 초청받은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은 “역사극의 교훈을 배워야지 이전투구의 소재로 활용해서야 되겠느냐”며 “정치인들이 대권 타령만 하고 있는데 정말 극중의 ‘석총’이 살아와 다음 미륵이 누구인지 미리 말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한마디했다. 이의장은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민심을 얻지 못하면 나라가 바로 서지 않는다)’이 바로 ‘태조 왕건’의 교훈”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KBS가 이날 국회 문화관광위에 제출한 2000년 결산 자료에 따르면 ‘태조 왕건’의 제작비는 85억4900만원이나 된다. 편당 제작비가 8500만원이상인 셈.
▼문광위 "제작비 85억원"▼
문광위에서 영화배우 출신의 강신성일(姜申星一·한나라당)의원이 “제작비가 당초 예산보다 58%나 초과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이석우(李晳宇)KBS제작본부장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의상을 완전히 새로 제작했고 전쟁 장면이 많아서였다”고 답변했다.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