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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다이아몬드를 뒤쫓는 악당들

입력 | 2001-03-07 11:42:00


'영국의 신예' 가이 리치 감독은 전작인 에서 자신이 얼마나 영리하며 기운찬 사람인지를 자랑하듯 보여줬던 남자다. 는 이전의 거장들이 사용해왔던 영화 문법들을 조롱하며 거꾸로만 갔던 영화. 영리하지 않은 관객이나 졸다가 다시 봐도 말이 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일종의 '독침'이나 다름없었다.

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할리우드를 잔뜩 비꼬았던 그는 이번에도 여전히 힘을 풀지 않았다. 에서도 가이 리치 감독의 장기는 여전히 비비꼬인 이야기이며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 익혀두었던 현란한 영상미다.

그런 점에서 는 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의 영화다. 전작을 이해하지 못하고선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갈래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한가지 상업적인 전략이 있다면 그건 바로 스스로 무덤가(?)에 쳐들어온 브래드 피트와 마돈나 정도. 반듯한 알마니 정장보다 단추 몇 개 풀린 와이셔츠가 더 잘 어울리는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에서 더 이상 마지노 선이 없을 만큼 막 나간다. 그가 뱉어내는 영어는 하나도 귀담아들을 수 없는 수준이며 얼굴은 항상 똥 씹은 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상업적 엔진이 된다.

말썽 많은 아줌마이자 이상한 옷을 잘 입기로 소문난 마돈나 역시 연하의 남편 가이 리치를 위해 아낌없이 많은 걸 주었다. 악당의 자동차에서 야릇하게 흘러나오던 음악, 그건 마돈나가 이 영화를 위해 헌사한 곡 'Lucky Star'였다.

보다 상업적인 원동력을 많이 보강한 이 영화는 덕분에 참 재미있는 영화로 완성됐다. 아일랜드 집시, 뉴요커, 런던 토박이, 유태인, 흑인, 러시아인, 심지어는 이슬람교도들까지 전세계 인종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며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모습이 완벽한 '인종의 도가니'를 방불케 한다.

줄거리는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단순하다면 또 단순하다. 주먹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거머쥐기 위해 다투는 악당들의 경쟁이 방만하게 풀어져 있는 영화. 요약할 수 있는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보여지는 방식은 완전히 꼬여있다. 이름 앞에 이상한 닉네임을 달고 다니는 '네 손가락' 프랭키(베네치오 델 토로)는 훔친 다이아몬드를 뉴욕에 있는 보스 아비(데니스 파리나)에게 빨리 전달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간에서 실종되고 만다. 도박 권투에 참가하기로 한 프랭키가 실종되자 뉴욕 보스는 영국으로 날아오고 이 사건을 의뢰 받은 '총알 이빨' 토니(비니 존스)는 다이아몬드 찾기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라면 그나마 단순 명쾌했을 것이다. 그러나 꼬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가이 리치 감독이 이 정도로 얌전을 떨었을 리는 없다. 그는 다른 장소에서 또 다시 어마어마한 사건을 발생시킨다. 무허가 권투 도박장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뒷거래 현장. 풋내기 무허가 권투 프로모터인 터키쉬(제이슨 스테이섬)와 토미(스테판 그라함)는 마피아 두목 브릭 탑(알란 포드)과 사기 도박을 계획하지만 4회에 쓰러져야 할 권투 선수 미키(브래드 피트)가 오히려 상대 선수를 K.O.시키면서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린다.

통이 작은 권투 프로모터, 마피아 보스 브릭 팝, 거칠지만 엄마에게만은 '깜빡 죽는' 마마보이 집시 미키, 보석 장물아비 더그, 다이아몬드 도둑 프랭키, 다이아몬드를 애타게 기다리는 뉴욕 보스 아비, 프랭키 찾기 대작전에 투입된 토니 등. 다종다양한 악당들이 펼치는 치열한 경합은 영화를 연신 뜨겁게 달궈 놓는다.

영화 속 다이아몬드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배우들의 연기 경쟁도 치열했다. 이제야 비로소 영화 속에서 연기를 보여준 브래드 피트, 의 멕시코 경찰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오른 베네치오 델 토로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제 몫을 다했고 스타까지 포진해 있으니 의 흥행기상도 역시 아주 쾌청한 편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전미 개봉 시 첫 주에만 8백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여 가이 리치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가 수많은 화제에도 불구하고 전미 38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는 걸 감안하면 의 약진은 눈부신 수준.

그러나 를 보고 나면 누구보다 영리한 가이 리치 감독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는 왜 굳이 자기 스스로 자기 작품을 치열하게 복제한 것일까. 첫 작품과 두 번째 작품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어도 문제겠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운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그런 점에서 가이 리치 감독은 세 번째 작품을 봐야만 '걸물'의 진위 여부가 판별될 '진짜와 가짜'의 회색분자다.

(원제 Sanach/감독 가이 리치/주연 브래드 피트, 베니치오 델 토로/러닝타임 102분/등급 18세 이용가/개봉일 3월17일)

황희연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