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알맞은 부분모임 기호가 뭘까요?”
“모임요?”
“집합 말이에요. 북한에선 집합을 모임이라고 해요.”
7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성지고교 1학년 1반 강의실. 집합과 수체계를 배우는 수학 시간이었지만 뜻밖에도 수업은 북한말 강의로 시작됐다.
이날 강사는 탈북자로는 처음 남쪽 교단에 선 천정순(千貞順·여·36·서울 양천구 신정7동)씨.
천씨는 집합의 개념을 강의하는 중간중간 ‘옹근수(정수)’ ‘정수(양수)’ ‘부수(음수)’ 등 북한식 수학 용어 풀이도 곁들였다.
“북한에선 알아주는 수학 선생님이었어요. 학생들 사이에선 ‘천정지’ ‘맥주 선생’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인기가 있었죠.”
천씨는 북한 김정숙사범대 수학과를 졸업한 후 양강도(황해도) 혜산시 봉흥고등중학교(중고교)에서 11년간 수학을 가르친 베테랑 교사.
하지만 97년 9월 초 남편과 시부모 등 8명과 함께 탈북해 중국을 거쳐 남한에 정착한 뒤 교단을 떠나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교원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씨가 교단에 서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성지중고교 김한태(金漢泰)교장은 “천씨가 수학은 물론 통일교육도 함께 할 수 있는 인재”라며 선뜻 강사 자리를 마련했다.
성지중고교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주부 소년소녀가장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천씨는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지냈는데 다시 학생들 앞에 서게 돼 기쁘다”며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천씨는 정부가 교사 경력을 인정해 주는 대로 성지학교에서 정교사로 활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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