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다시 NGO 공모사업의 시즌이 되었다. 행정자치부와 전국의 시도가 올해 두 번째로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의해 NGO들로부터 사업을 공모받아 4월중 150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지급하게 된다. 국정홍보처가 8년째 시행하는 민주공동체 실천사업도 10억 규모로 4월중 시행된다.
대부분의 NGO들이 그간 이들 사업에 공모해왔지만 최근 일부 NGO들은 참여하지 않으며, "정부지원을 받게 되면 정부에 대한 비판이 무디어지고 NGO의 자율성이 침해받는다"는 정체성을 강조한다. 작년 11월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NGO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질문에 대해 NGO 간부 93명 중 43%가 반대했고 57%가 찬성한 것도 NGO 내부의 엇갈린 찬반 양론을 보여준다.
참여연대가 98년부터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회비와 후원금에만 의존해 왔다. 경실련은 작년 총선때 낙선운동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정권과의 유착설에 시달리면서 정부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를 지켜오다 올초 공기업에 부당한 지원금 요구를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곤혹을 치뤘다.
이같은 두 단체의 입장과는 달리 당장 사업비가 없어 단체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다수의 NGO들은 정부지원을 거부할 수만도 없는 실정이다. 정부지원을 되도록 안받는 것이 좋다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지원 없이는 당장 단체를 존속시키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작년부터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의해 NGO 재정지원이 공식화되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법적 쟁점은 아니지만,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NGO들의 자율성에 관한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어 왔다. 총선시민연대 활동에 대한 정권유착설 시비가 일자, 이를 계기로 경실련, 녹색연합, 정치개혁시민연대, 함께 하는 시민행동 등도 작년에 정부지원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특히 정부를 비판하고 정책변화를 주창하는 이른바 '애드버커시'(advocacy) NGO에 대한 정부재정 지원에 관한 문제가 또 다른 쟁점이 되었던 것이다. 작년에 정부지원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 경실련의 입장에 대해, 경실련 박병옥실장은 "법적 근거도 있는 마당에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서 정부와 유착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시민단체의 재정자립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기금지원 거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권력감시 단체들은 정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지 않는 것이 좋으며, 사회복지적 성격의 사업에는 시민단체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옳다" 고 말했다.
'애드버커시' NGO에 관한 문제는 미국에서 최근까지 심각한 정치쟁점이 되어 왔다. 클린턴 행정부가 국가봉사조직인 어메리코어(AmeriCorps)를 도입했을 때 의회 다수파였던 공화당은 이를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는 시민사회에 대해 간섭이나 개입해서는 안되며 시민사회 스스로가 사회문제 해결에 노력하도록 장려해주는 정도의 정책으로 충분하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특히 어메리코어가 서비스 활동 이외에 권익옹호와 정책변화 주장을 하는 '애드버커시'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선에서 양당이 타협을 함으로써 어메리코어가 출범할 수 있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소수민족문제, 빈곤층 문제, 에이즈 감염자, 동성연애자 등 소외층과 문제집단의 권리신장과 권익옹호, 정부정책의 변화와 로비를 위해 활동하는 NGO들에 대해 정부지원과 세금감면 등의 혜택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법안을 상정하곤 하였다.
이같은 법안들은 '인디펜던트 섹터'(전국NGO연합회 성격)의 로비활동으로 입법화되지는 못했지만, 그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출범으로 앞으로 의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재론될 소지가 다분한 쟁점사안이다.
한국의 경우 많은 '애드버커시' NGO들이 정부지원을 받고 있다. 보수, 진보 정치이념을 둘러싼 정치적 시련을 겪지 않은 것만도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행정자치부 등 정부 공모사업에서 '애드버커시' 사업이 드물며, 주로 서비스 지향적 사업이 많은 것은 NGO들이 '애드버커시' 사업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업을 신청하면 선정될 수 없으리라는 판단에서 신청을 꺼리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작년부터 시행된 법에 의하면 사업선정에서부터 평가에 이르기까지 NGO들은 대단히 수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재정지원, NGO의 사업주관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궁극에는 NGO들이 국고지원을 받는 독립재단을 운영하고 사업들을 공모받아 지원하며 자체 평가를 할 수 있는 체제로 발전되어야만 한다.
이런 방향으로 법개정이 필요하다. 그럴 때만이 NGO들이 지금의 지원방식에서 빚어지는 정권 유착설과 같은 음모로부터 해방되며, 정부를 비판, 감시하거나 정책변화를 꾀하는 '애드버커시' 사업들도 자유롭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간섭이라는 사소한 정치적 오해를 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선정에서 일어나는 잡음도 없을 것이며, 사업평가에 대해서도 보다 진지한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가 작년 11월에 실시했던 설문조사에서 NGO 간부들은 "현재와 같은 민간단체 지원체계의 정부 주도방식"에 대해 긍정 21%, 보통 36%, 부정 43%로 나타나 정부주도 방식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그 대신 "민관공동 지원체계방식"에 대해서는 긍정 81%로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주성수 교수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