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재미있는 영화를 찾던 누군가에게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추천하자, 상대가 “아이들을 앞세운 이란 영화들이 착하긴 해도 재미는 없잖아”하고 말을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국의 아이들’은 다르다.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로 코믹하고 가슴 찡하며 드라마틱한 스포츠 액션까지 담아내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이란 영화 중 처음으로 99년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이 영화는 마지드 마지디 감독이 친구에게서 들은 실화를 소재로 제작한 것. 남매 역을 맡은 두 배우는 영화 속에서처럼 가난한 집안의 평범한 아이들.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이들은 연기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국내에 소개된 다른 이란 영화들이 그러했듯, 이 영화 역시 고달픈 현실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부각시킨다.
착하고 가엾은 남매 알리와 자라는 맹인 고물장수가 주워간 자라의 신발을 신은 아이를 찾아냈지만, 그 아이가 맹인 아버지의 길 안내를 하는 것을 본 뒤 신발을 돌려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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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부잣집 소년을 보고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소년이다. 그가 3등을 하려고 기를 쓰는 마라톤 장면은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이 장면을 두고 “록키가 링을 떠난 이후 가장 기념비적인 스포츠 액션장면”이라고 평했다.
이란 빈민층의 고단한 일상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끝없는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속 인생은 순결하고 동화적이다. 아이들을 짖누르는 경제적 고난도 동화같은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는다. 알리가 마라톤을 하느라 물집 잡힌 발을 담근 연못에서 그를 위로하듯 금붕어들이 모여드는 마지막 장면은 꿈결처럼 아름답다.
참혹한 현실에 비해 너무 낭만적인가? 그러나 인생이 얼마나 뜻하지 않은 고난의 연속인지를 마치 경쟁하듯 보여주는 영화들의 틈바구니에서, 이 소박한 영화는 작지만 포근한 위안을 건낸다. 알리의 부르튼 발을 어루만지는 물고기들처럼. 미국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제작에 참여했다. 17일 개봉. 전체 관람가.
susanna@donga.com
[[줄거리]]
테헤란의 초등학생 알리(미르 파로크 하스미안)는 여동생 자라(바하레 시디키)의 하나 뿐인 신발을 수선해 돌아오다 그만 잃어버린다. 남매는 가난한 부모에게 신발을 사달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알리의 낡은 신발을 교대로 신기로 한다. 자라는 오전반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달려와 오후반인 오빠에게 신발을 건네준다. 운동화 한 켤레를 나눠 신느라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다니던 알리는 전국 어린이 마라톤 대회 3등상 상품이 운동화인 것을 보고, 동생을 위해 마라톤에 나가 1등도, 2등도 아닌 3등을 하기로 결심한다.